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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3 19:37 수정 : 2007.01.24 09:48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세상읽기

공동체가 발전하는 데서 국가 리더십의 구실이 너무나 중요하다. 필자가 재직하는 학교에선 국가 리더십에 대한 바른 연구와 교육을 위해 전직 대통령 관련 연구·사료기관을 설립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좋은 미래는 좋은 리더십과 교육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헌법 개정 논란은 좋은 제도를 향한 우리의 고뇌의 산물로서, 제도와 리더십의 결합 양태는 사회 발전과 쇠퇴를 결정한다. 시민단체와 학계, 정당의 헌법 개혁 구상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제도 변화를 통해 제도가 공동체와 리더십, 그리고 다른 제도(정당 등) 발전의 촉진 요인이 되게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노 대통령의 제안은 헌법 개혁을 꿈꿔 온 시민사회와 학계로선 곤혹스런 이중 의미로 다가왔다. 헌법 개혁 논의의 공식화·사회화라는 긍정적 의미와 파당화·정쟁화라는 부정적 의미를 함께 갖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정당→의회의 민주적 3단계 헌법 개혁을 구상하던 그들에게 개헌 제안은, ‘노무현 현상’으로 말미암아 헌법 논의를 중단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시민사회와 정당에 먼저 개헌 발의를 요구하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비록 최소 개헌을 추구하더라도,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통한 안정적 정부 구성, 정당명부 비례대표 의원의 대폭 증가, 대통령 임기 중반에 의회 비례대표와 지방선거 동시 실시를 통한 중간평가 및 정당 발전 모색 등의 방안을 포함하였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제안의 성공 여부를 넘어 좋은 사회를 향한 ‘헌법 개혁 프로젝트’는 지속될 것이다. 이번 헌법 논란을 계기로 외려 심도 깊은 헌법적 성찰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심층연구와 교육도 필요하다. 건국 헌법과 임시정부 헌법의 고도의 연속성과 일치, 민주공화제 도입, 영토조항 삽입, 건국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부인과 평등국가 지향, 1954년 시장경제 전환, 72년 유신헌법의 첫 자유민주주의 내용 삽입과 왜곡 ….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와 내용, 삽입 과정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소수 전문가만 알고 있다. 정치적 해석들도 난무한다. 최근엔 헌법은 쉬 고쳐서는 안 된다는 헌정주의·헌법예외주의와, 헌법 논의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헌법 엘리트주의도 목도된다. 정치의 사법화, 일상의 법률화라고 불릴 정도로 헌법과 법률이 정치와 일상생활, 민주주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헌법과 정치를 분리하는 전통적 문제의식도 발견된다. 헌법은 정치의 일부이며,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문제여야 한다. 또 (헌법을 포함한) 입법활동은 근대 민주주의 등장 이후 정치의 핵심 영역이자 시민계층과 정당의 존재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노무현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헌을 주장했던 정당, 지도자, 언론들은 시점과 사회경제 상황을 이유로 근본문제에 대한 유예를 시도한다. 한국 발전의 토대를 놓은 토지개혁과 교육기적을 가능케 했던 건국헌법처럼 사회경제와 헌법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최근 미국 존슨 대통령 도서관에 갔다가 인근에 있는 오 헨리의 옛집을 방문하였다. 〈마지막 잎새〉의 끝 장면과 오늘의 한국이 중첩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잎새 하나를 그려 죽어가는 존시를 살려 놓고는, 자신은 폐렴으로 숨지는 늙은 화가 베어맨. 오늘의 혼돈에서 노무현이 한국을 위해 자기를 던지는 베어맨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곧 얼마나 철저히 죽어 밀알이 되고자 하느냐에 달렸다. 현재 권력의 제안을 미래 권력인 정치 지도자와 시민들이 활용해 미래 논의로 승화시켜, 산업화·민주화·정보화에 이어 민주제도의 창출에서 또하나의 성공 이야기를 써 보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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