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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5 17:23 수정 : 2007.01.25 17:23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세상읽기

여성 평화운동에 참여한 한 지인이 어떻게 해야 여성의 이름으로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영웅이란 곧 전쟁영웅을 의미하던 시절, 남장을 하고 참전해 승리를 이끄는 것은 여성들에게 멋진 ‘판타지’의 하나였다. 문학작품 속에는 남자들이 이기지 못하는 전투를 여자들이 승리로 이끄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한국 고전소설의 주인공 박씨 부인과 그녀의 시녀 계화도 소설에서 병자호란 때 외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여성 정치인들 사이에서 잔다르크 이미지가 여전히 영순위로 선호되고 있는 것도 역사이야기를 통해 주입된 뒤 마음속에서 부풀려진 환상의 작용이다.

남장한 구국여인 이야기가 대체로 공상 영역에 속했다면 현실국가는 전몰군인의 어머니에게 찬사를 바쳤다. 모든 니리가 이 관행을 따르고 있다. 전쟁에서 아들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국가에서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영광이요, 국가를 위한 최고의 공헌이라는 담론은 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다. 따지고 보면 일본 학자 다카하시 데쓰야가 말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존립기반인 ‘감정의 연금술’은 이런 전통을 군국주의 및 ‘천황제’와 결부시켜 기이한 형태로 뒤튼 것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은 바뀌었다. 체첸 전쟁에서 숨진 러시아 병사들의 어머니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어머니 그룹’을 만들어, 영광된 전몰장병 어머니의 지위를 거부하고 전쟁의 의미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였다. 미국의 반전 어머니 신디 시핸도 이라크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뒤 “나라를 위해 아들을 바쳤다”는 수사를 거부하고, 정치인의 권력욕 때문에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국가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공격전쟁에서 아들을 잃는 것은 영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어머니들은 “여성이 낳은 생명을 전쟁이 앗아가선 안 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북한 핵실험 직후 한때 전쟁불사론이 들끓었다. 국민개병제 아래서 아들들을 군에 보내고 있는 어머니들이야말로 젊은 자녀들이 전쟁으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평화 자체를 보살피도록 마음을 모아야 하고, 군이 자녀를 제대로 대우하는지 살필 일이다. 지난해 12월 군 의문사 조사위원회의 발표를 보면, 군복무 중 사고(‘술을 마신 후 토한 것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로 죽었다던 하사관이 실제로는 폭행으로 숨졌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26년이 지난 지금, 팔순의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매맞아 죽었다는 참혹한 진실을 알릴 수 없어 희생자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들이 맞아 죽었다는 쓰라린 진실을 아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가 운이 나빠 사고로 죽었다고 믿는 편이 노모를 위해서는 더 낫다고 여긴 주변의 배려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더 일찍 진실을 알았다면, 유사한 경험을 가진 어머니들과 함께 인간적인 군대 만들기 운동을 전개했을지도 모른다.

젊은 목숨을 무의미하게 ‘나라에 바치지’ 않도록 하려면 내 나라에서건 다른 나라에서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기구인 군대 안에서 젊은이들이 다치고 죽는 일을 막아야 한다. 어찌 보면, 군대조직에 익숙하여 “군대란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남자들에 비해, ‘세상에 그런 일이 있나’라고 묻는 여자들이 군대를 인간화하는 노력에 앞장서는 데는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한국 군대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계속적인 군대개혁을 위한 시민통제(혹은 협력) 기구를 만들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여성 스스로 평화에 기여하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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