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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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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언론마다 자체적으로 또는 정치평론가의 입을 빌려서 대선 관전법 조언과 훈수를 심심찮게 매체에 올리는 계절이 되었다. 예컨대 한나라당 후보들이 과연 당내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단일 후보를 낼 것인지, 열린우리당은 몇 갈래로 분열하고, 여당 또는 통합신당의 대선 후보는 누가 될지 등의 예측기사들이 그것이다. 이런 예측기사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극성을 부릴 것이다. 정치가 경마가 아니고, 무협지도 아닌데 ‘관전’이라는 용어가 영 마음에 걸리고, 도대체 적절치 않아 보인다. 유권자를 쇼나 보고 인기투표에나 참여하는 무뇌아 관객으로 보지 않는 이상 그런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더구나 그런 식의 용어 사용으로 대통령 선거를 한낱 정치공학적 표 계산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도 일어난다. 그런 기사들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면서 그것이 표심 예측의 과학적 방법인 양 포장하지만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인 바에야 여론조사인들 얼마나 민심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그것에 목을 매는 정치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훈수 두기는 마치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한다.사실은 정치권 자체가 이런 식의 용어 사용에 원인을 제공한다. 정치가 동물의 왕국도 아닌데 대선만 앞두면 짝짓기 놀이가 유행하고, 철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당에서 통합이니 탈당이니 하는 얘기가 무성하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에는 주로 야당 쪽에서 들리던 것이 최근 대선은 여야를 가리지 않거나 오히려 여당 쪽에서부터 얘기가 시작한다. 과거 독재시기에 견줘 확실히 여당이 힘이 빠진 모양이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한국 정당정치의 고질적 문제들이 있다. 해방 이후 한국 정당은 이념·정책에 기초한 결합이 아니라 보스 중심의 인적 결합에 의존하였고, 대통령이 되었든 국회의원 또는 각종 자치단체 장이나 의원이 되었든 당선 가능성 제공 여부가 조직적 결합력의 거의 유일한 원천이었다. 정당에 이념적 정책적 동질성이 없고 무원칙한 인치(人治)와 표 계산에 의존하다 보니 정치인들이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최근 제기된 개헌론은 힘 빠진 여당과 힘센 야당, 대통령과 국회의 극한 대결 등 현재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시정하고, 책임정치를 강화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대선을 한낱 정치적 흥행극으로 치부하지 않고, 정치제도 개선을 위한 진지한 논의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가져본다.
또 개헌의 필요성에 국민 다수가 공감을 표시한 것은 문제점이 대통령의 막말로부터 비롯한 것인지 또는 식물국회로부터 비롯한 것인지를 논외로 한다면 어쨌든 지금의 제도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 국민들이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대통령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은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의 출발점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한국 정치의 고질을 일거에 해소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또 야당은 개헌논의 자체를 거부하며 ‘민생’이 집을 나갔는지 말끝마다 민생과 일자리 창출을 외치지만 그것은 항상 말만으로 끝났다. 벌써부터 후보 검증 얘기가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난무하지만 궁극적 검증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대선을 통해서 한국 정치·사회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마련해야 할 때다. 그들만의 리그에 맡겨 놓기에는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이 매우 갑갑하고, 국민들의 미래는 너무나 소중하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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