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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30 18:31 수정 : 2007.01.30 18:32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

세상읽기

석궁사건의 발단이 된 ‘교원지위확인 소송’의 주심판사인 이정렬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교원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규범도 법이라고 주장한다. 법원이 한 개인의 교육자적 자질을 판단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주심판사의 답변인 셈이다. 그런데 법공동체 구성원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관의 관점으로는 매우 위험스러워 보인다.

도덕과 법의 관계는 법철학의 핵심적 주제다. 도덕규범에는 공동체 안에서 바람직한 삶을 위해 서로 추천하는 권고 규범과 올바른 삶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규범이 있다. 일반적으로 권고 규범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은 덕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지는 않는다. 반면 의무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비판과 함께 처벌도 받는다. 특히 전통사회에서 도덕 재판에 의한 처벌은 가혹한 폭력이었다.

도덕 재판은 행위뿐만 아니라 내면세계도 신문의 대상으로 삼으며, 행위자의 인격까지 처벌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행위자를 처벌한 후 공동체에서 추방할 것을 명령한다. 도덕이 실현된 사회는 좋은 사회지만, 도덕 재판이 횡행하는 사회는 공포가 지배하는 폭력 사회다. 법치주의가 도덕 재판을 금지하는 이유다.

도덕이 의무를 강조한다면, 법은 권리를 중시한다. 법은 구체적 행위만을 문제시함으로써 내면세계를 자유로운 권리 공간으로 허용하며, 법률로 금지하지 않는 행위는 비록 반도덕적이라고 할지라도 처벌하지 않으며, 범법자의 행위를 처벌할 뿐 그의 인격은 처벌 불가능한 권리로 인정한다. 법적 처벌은 범법자를 공동체로부터 유폐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다원성을 존중하는 현대사회에서 법은 도덕보다 약하지만 유일한 사회통합의 원천인 것이다.

법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의할 경우 도덕적 규범은 법 규범으로 전환될 수 있지만, 도덕 재판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의 징계 관련 조항에는 도덕 재판을 가능하게 하는 법규가 많다. 예를 들어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교원을 징계해야 한다는 규정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교원의 품위를 손상하는 금지된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조항이 없다.

이처럼 금지된 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법 규범을 근거로 이루어진 재판은 도덕 재판일 수밖에 없다. 김명호 교수의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교원의 자질’도 구체적 금지행위가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경우다. 따라서 법관의 주관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금지행위가 구체적이지 않은 법 규범은 처벌의 기준이 아니라 권고의 이념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를 위반하고 도덕 재판을 남발하는 것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마녀재판의 시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기초한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인혁당 사건에서처럼 법관들이 양심을 저버린 판결을 수없이 해왔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조차도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법살인을 저지른 판사들의 처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양심을 심판하는 것은 도덕적 마녀재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도덕은 법이 아니다. 이 나라 국민은 누구나 아는 이 사실을 법 논리에 빠져 있는 법관들만 모른다. 법의 진정한 주체인 국민의 눈으로 자신들의 양심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약자의 심장을 향해 수많은 석궁을 쏘면서도!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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