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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01 17:17 수정 : 2007.02.01 17:17

이윤재/코레이 대표

세상읽기

최근 <한겨레>에서 마련한 ‘취재보도 준칙’을 읽으며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생각했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두고서는 많은 담론을 생산하면서도, 막상 개인이 얼마나 언론 매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언론이 전달하는 것은 항상 진실, 아니 최소한 사실이고, 정의와 공익의 편이라는 전제에 익숙진 탓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독재 권력이 언론 자유를 탄압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환상일 뿐,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과는 매우 다르다. 민주화 덕분에 절대 권력이 분산되면서 생긴 권력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차지하게 된 (일부) 언론은, 그간 끊임없이 특정 계층의 이해를 여론으로 포장하며 소통의 길목까지 독점함으로써, 이젠 두려워할 상대가 아무도 없는 막강한 권력 주체가 되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진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사회적 영향력을 모든 언론매체들이 골고루 공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소수의 대형 언론들이 독점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곧, 민주화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사회 등 다른 분야들처럼 언론 시장 역시 양극화했고, 이른바 보수적 주류 언론들만 언론 자유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정치 권력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를 위한 언론의 자유냐는 회의와 함께, 여성학자 정희진의 지적대로, 어떤 의미에선 지금 우리 사회에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치 권력화 자체를 선악의 관점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권력은 누구든 남용할 소지가 있고, 남용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속성이 있기에 민주사회에선 반드시 견제 집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언론에는 권력만 있을 뿐 책임을 물을 변변한 견제 장치가 없다. 그간 제도적 장치를 만들려는 몇 차례의 시도는 이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난받으며 후퇴했다. 민간 차원에서도 ‘안티운동’ 등 사회적 제동을 시도했지만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주류 언론들의 더욱 튼튼한 결속을 가져 왔다.

이처럼 언론의 힘이 강력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은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개인의 일상 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와 판단의 상당 부분을 언론에 의존하는 우리 문화에서, 개인에 대한 언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은 많은 사람들이 그날 하루 세상을 읽는 통로이고, 주류 언론의 시각은 곧 ‘우리의 생각’으로 주조된다. 사람들은 언론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주류 언론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신뢰하는 경향마저 있다. 오보와 불공정 보도 때문에 사생활과 인권 침해를 직접 체험했던 사람들 중엔 이른바 지도층 인사와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지만, 그들 역시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던 그 언론이 다른 사람, 특히 사회적 약자를 두고도 유사한 편파 보도를 하리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당수 식자들은 주류 언론의 주장에 동조하고 옹호하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시대, 언론의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 권력의 상대화 곧, 언론의 보도 내용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사회적 상상력을 갖는, ‘언론으로부터의 자유’일 것이다. <한겨레>의 ‘취재보도 준칙’은 바로 그 자유를 위한 언론 매체의 정당한 노력이다.

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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