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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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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내일부터 베이징에서 6자 회담이 속개된다. 이번에는 뭔가 구체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2003년 8월 첫 회합 이래 3년여 번번이 기대와 실망을 거듭해 온 경위를 생각하면 낙관론을 선뜻 믿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북한이 6자 회담에서 핵 논의의 전제조건이라 주장해 온 금융제재에 관해 지난주 베이징에서 북-미 실무회담이 열렸다. 그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 발행되는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지난 5일 처음으로 이를 언급했다. “미국측이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향을 정하고 핵문제 토의의 돌파구를 열었다고 판단하면 조선은 여기에 적극 호응할 것”이라며 “6자 회담의 순조로운 추진을 위해서는 금융제재 문제를 장애물로 부각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금융제재 ‘해결’이 6자 회담의 “전제 조건”이라고 못박았던 종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유연한 표현이 눈에 띈다. 이 신문은 또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사찰 수용 의사를 미국에 이미 전달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북한도 이번 6자 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을 시사한다.
핵실험과 유엔 안보리 제재로 충돌을 향해 치닫던 북핵 위기가 일단 교섭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다행이다. 무엇보다 미국 부시 정권의 자세가 바뀐 게 고무적이다. 이라크 전쟁의 실패로 네오콘 세력이 크게 퇴조하고,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부시 정권의 대북 ‘양보’가 눈에 띈다. 그동안 완강하게 거부해 왔던 북-미 양자교섭을 거듭 열고 있다. 아직 그 내용이 상세하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괄적인 관계개선 방안과 더불어, 그동안 그렇게 비판해 왔던 클린턴 정권의 단계적 접근방식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여유’조차 보이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최소한의 성과’라도 얻으려 요구 수준을 낮추며 노력하는 모양새다.
2005년 9월 금융제재 이후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에 으르기까지 보이던 양쪽 모습이 역전된 느낌조차 받는다. 당시 북한은 금융제재의 압박을 숨기지 않고 미국과 교섭에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지난해 4월 도쿄에서 민간 6자 회의가 열렸을 때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힐 국무차관보와의 회동을 기대하며 도쿄까지 와서 중국 대사관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북한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모습에 미국의 강경파는 금융제재라는 수단의 효용에 만족하면서 더욱 고삐를 조여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기 위해 자신의 약점을 일부러 드러내 보이면서 미국의 강경정책을 유도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음모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쪽의 강경정책이 상대방의 강경론을 유발하는 것은 국제정치에서 자주 보이는 구도다.
이번에 보이는 북·미 양쪽의 양보 자세도 본격 협상을 위한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북-미 모두 내부에 강경파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 처지에서는 협상의 모양새도 다음 단계의 강경책으로 가고자 하는 수단이거나 시간벌기일 수도 있다. 네오콘의 입지가 현저히 약화된 것은 사실이나, 협상을 장기화시키면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협상 결렬과 긴장 격화로 유도할 조건들은 여전히 있다. 5일치 〈조선신보〉가 “북·미 두 나라가 탐색전으로 헛된 시간을 보내고 교착상태가 지속되게 되면 문제해결의 구도와 틀거리가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며 “지체없이 발걸음을 크게 뗄 것”을 주장한 것은 타당하다.
모처럼 형성된 교섭 국면의 계기를 살려, 한반도 탈냉전의 큰 틀을 만들자면 좀더 높은 차원의 외교가 동시에 움직여야 할 때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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