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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08 16:58 수정 : 2007.02.08 16:58

한상희/건국대 교수·법학

세상읽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리고 돈은 이 모든 것을 거느리며 절대권력으로 군림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제6의 감각이자 만능척도임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근 우리 사회에 떠도는 금전만능의 행태들이 의당 면책되지는 않는다. 법이 법이기 위한 최소한의 품위조차 상실한 채 국민경제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일부 시장 지배자들한테나 봉사하는 사유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왜곡된 법 현실은 돈 앞에 한없이 무력한 우리 사법체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계급사법의 폐단에 던지는 사회적 공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900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재벌총수에게 법정 최저형에도 못미치는 징역 3년형을 선고하였다. 기업총수에게 1심에서 실형선고를 하는 듯 마는 듯하다 항소심에서 예외없이 집행유예로 사실상 면책시켜주는 과거 사례가 또다시 반복되는 느낌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부정한 돈이 법적 정의를 구축하는 현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곧 있을 것이라는 경제인 사면조처는 그나마의 법원 판결조차도 무력화한다. 4년 전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국민의 의지와 열망은 어디로 갔는지 ‘경제인들의 투자의욕을 고취’한다는 맥 빠진 구호만 난무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견딜 만하다. 적어도 그 ‘경제인’들의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여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법적 판단을 내리고 이를 확인하는 절차라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국무회의는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규제를 완화하여 출자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인상하는 것을 뼈대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에 따라 출총제의 적용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시행령 개정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 한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자본의 무한복제를 꿈꾸는 재벌의 탐욕에 정부가 나서서 합법적인 자유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법과 정의의 집행을 본연의 임무로 하는 법무부 장관의 행보를 더하면 거의 점입가경 수준에 이르게 된다. 노조한테는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델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겠다고 엄포를 놓던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같은 범법행위라 하더라도 기업한테는 관용 수준에서 더 나아가 아예 관련 법제도까지도 바꾸겠다고 공언한다. 그래서 전임 장관 시절에 마련된 상법 개정안까지도 흔들어 이중대표 소송제나 회사기회 유용금지 제도 등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들을 약화시키려 한다. 그가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위한 법무정책”이 시장경제의 건전성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희생 위에서 구성되는 천민자본이 국가경제에 ‘기생하기 좋은 환경’을 의미하는 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면 도대체 왜 이 사회에 법이 존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수많은 농민들이 지명수배되는 한편에서 분식회계를 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회삿돈을 횡령한 기업인은 관용의 대상이 되어 거리를 활보한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가로막는 ‘집시법’은 서슬이 시퍼런 반면, 탐욕의 자유시장을 양성화하는 법률은 도처에서 추진된다.

대저 자유시장에 존재하여야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법의 형태로 가시화된다. 권리와 의무를 선언하고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시장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경제’라는 명분 아래 이를 특권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이런 질곡의 현장에서 이제 20년을 맞이하게 되는 87년 체제는 시나브로 그 이념적 지표를 상실해 가고 있다.

한상희/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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