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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11 16:56 수정 : 2007.02.11 16:56

김갑수/문화평론가

세상읽기

교사에게 성직을, 의사에게 인술을 요구하는 것은 오늘날 노동의 관점으로 볼 때 가당찮은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학교와 의료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같은 요구가 반복된다. 그 직종에 대한 일종의 원관념(아키타이프)이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와 의사들은 막막하고 답답해한다. ‘대체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무슨 희생을 치르고 있는가?’

정치인에게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으로는 공복, 곧 민중의 머슴이라는 역할 기대가, 현대사에서는 투사 또는 개혁가의 이미지가 짙게 드리워진 게 정치영역이다. 성직과 인술의 의미가 그러하듯 정치인에게는 자기 이해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 적어도 명목적으로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해야 한다. 가령 ‘대통합을 위해 분열합니다.’ 같은 형용모순의 말. 하긴 어떻게 유권자를 향해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대선은 물론 다음 국회의원 자리도 보장되지 않아 뛰쳐나갑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길이란 가보면 뒤에 있다. 이것은 시인 황지우 시의 한 구절이다. 인맥과 지연에 따른 이합집산. 이것이 우리 현대 정치사가 걸어온 길이고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왜 이념과 정책에 따른 결사체를 이루지 못하냐고 다그칠 일이 아니다. 국가와 민족이 선험적으로 결정된 환경 속에서 한자리 하느라고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일 뿐이다. 원희룡과 김용갑이 한집안에 살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 집 간판이 당사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눈물겨운 사연을 아무래도 찾을 길이 없다. 뭉치든 흩어지든 그 배경에는 지극히 단순한 동기가 깔린 것 아니겠는가.

정국구도를 최대한 단순하게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산업화 세력 30년 집권에 염증이 났다. 무엇보다 분배에 대한 요구가 거세졌다. 민주화 세력에게 10년 세월을 맡겨 사회부문의 성장을 기했다. 그 다음 차례로 이제는 국가관리의 효율성과 사회통합의 요구가 거세졌다. 더불어 국제사회에 전면적으로 진입한 새로운 환경이 등장했다. 박세일 교수의 저작권을 표절하자면 이른바 ‘선진화 과제’가 대두된 것이다. 분열을 비난할 것도, 단결을 상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 당사자들의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오직 한국의 세 번째 지형변화, 같은 용어를 반복하자면, 선진화 과제에 충실한 대비를 누가 어떤 세력이 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주시할 따름이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개발연대의 낡은 주장과 민주투사의 목청이 더 많이 들려온다. 관성의 법칙과, 언어의 빈곤과, 새로운 비전을 창출할 상상력 부재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긴 그같은 문제는 유권자 측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적 변경은 곧 철새’라는 등식은 험난한 독재시절에 요구된 선명성의 잔영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지금은 더 쪼개지고 더 갈라지고 더 흩어져야 할 시점이 아닐까. 그런 상황이 안타까울 사람은 양대세력의 기득권 보스들일 뿐, 국가적으로는 창조적 진화과정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먹고 살자고만 일하는 것이 아닐진대 성직과 인술의 요구는 그 직업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다.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을 어떻게 포장하든 정치적 변신을 이해하고 양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한국의 미래 지형도가 어떻게 그려질지 그 원대한 구상에 골몰하기 바란다. 참으로 추상적인 말이지만 지나온 우리 역사가 그 의미를 증빙한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이상한 단합에 대해서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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