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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15 17:38 수정 : 2007.02.15 17:38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세상읽기

독일에서 광부·간호사로 일한 분들을 많이 뵈었다. 1960∼70년대, 한국 경제가 어렵고 독일에서는 인력이 필요했던 시절에 그곳에 간 분들이다. 체류기간이 20년을 넘는 분도 많았고 독일 시민권을 얻은 분도 있다. 타국 생활의 고단함에 대한 회고담을 간간이 들었다. 일터에서 언쟁이 붙었는데 독일어가 달려 한독사전을 들고 일일이 단어를 찾아가며 싸웠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씩씩한 목소리에도 물기가 서렸다. 이 분들이 한국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 헌신하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강단에 서고 예술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여수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불이 일어나 이주 노동자들의 인명참사가 빚어졌다. 외국에 노동인력을 송출하던 한국이 인력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바뀐 것은 90년대 초부터다. 그동안 한국 사회도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어느 정도 벗어난 듯 보였다. 산업연수생 제도 아래서는 이주 노동자를 연수생 명목으로 고용하여 3년 중 1년은 저임노동을 강요했는데, 문제가 심각했기에 올 초부터는 외국인 취업제를 고용허가제로 일원화했다. 미등록 노동자 곧 ‘불법체류 노동자’를 포함하여 이주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그런데, 이번 여수의 참사를 대하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미등록 노동자들을 강압적으로 체포·수용하였다가 출국시키는 일들은 계속되었고, 그들이 이를 피해 달아나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죽고 투신자살하는 일이 속출했는데, 결국 이번 사태로 그동안 쌓여 온 문제점이 드러났다. 미등록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어라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추방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은 분도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이 미등록 노동자가 되는 것은 주로 합법 체류기간이 끝난 후에도 귀국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쪽은 거주기간 5년이면 생기는 귀화자격을 주지 않으려고 짧은 기간 고용하고 내보낸 뒤 새 사람을 고용하려 한다. 그런데 이주 노동자들은 귀국해도 일자리가 없고, 인력송출 기관에 준 고액 수수료를 갚을 돈도 벌어야 하므로 한국에 머물러야 할 때가 많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내보내는 것보다 이왕 인력이 필요하다면 같은 사람을 지속적으로 고용하여 이 사회 일원이 되도록 돕거나, 그들이 귀국해 정착할 수 있도록 그들 나라에 필요한 기술수련을 도와주는 것도 미등록 노동자를 줄이는 길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몇 십분만 밖으로 가면 우리는 그 순간 모두 외국인이다. 물론 오늘날 자본은 국경 없이 이동하지만 노동의 이동에는 아직 많은 규제가 있다. 그러나 한국인 중에도 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90년 유엔이 제정한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이주 노동자란 “국적상 다른 나라에서 유급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종사하고 있거나 종사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규정한다. 삼성이나 현대의 외국 지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도 그 나라에서는 이주 노동자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사람이 이주 노동자가 될 확률은 높아진다.

이런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편적 권리로 인정하고 이들을 보호하고자 제정한 이주노동자 국제협약을 한국은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이 이 조약에 가입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청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에 필요해서 불러들였고 이 나라 경제에 기여하며 산 사람들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야박하게 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독일어로는 이주 노동자를 ‘가스트 아르바이터’라고 한다. 손님으로 온 노동자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우리는 이주 노동자를 손님으로 대하는가?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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