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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27 18:00 수정 : 2007.02.27 18:00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세상읽기

과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아베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대북 강경 자세가 정치적 자산이었던 아베 총리로서는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라고 해야 할 현상이기도 하다. 냉전 초기 미국의 전략가이자 외교관인 조지 케넌은 트루먼 독트린에 반대하면서 ‘강경론의 부메랑 현상’을 경고한 바 있다. 그리스와 터키라는 특정한 지역에의 관여를 ‘자유와 억압의 세계사적 투쟁’이라는 식의 선악 이분법적인 논리로 정당화했을 때, 여론의 경직화를 초래하고 국익에 입각한 유연한 외교가 제약된다는 우려였다. 실제로 이후 매카시즘이라는 냉전 히스테리가 미국을 휩쓸면서 대중 정책을 포함해서 소모적인 냉전 대결로 치닫게 된다.

6자 회담이 예상 밖의 진전을 보인 직후, 아베 총리의 발언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매주 발행하는 2월15일치 메일 매거진에 아베 총리는 “일본은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북한에 압력을 가해 왔습니다. 이것이 대화로 이행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대화 노선’으로의 전환을 시사하는 듯한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20일에는 총리 관저에서 납치 피해자 가족 및 지원단체 대표와 면담을 한 데 이어, 25일에는 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귀국한 납치 피해자 5명을 니가타까지 찾아가 만나는 열의를 보였다. 물론 납치문제의 강경 자세를 과시하는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성격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 일련의 면담에서 6자 회담의 의미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북-일 교섭에 임하는 방침에 이해를 구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강경 여론은 아베 정권에도 큰 부담이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유일하게 납치문제에 대한 강경 자세는 여전히 큰 지지를 얻고 있다. 2월 중순에 시행된 <아사히>의 여론조사에서는 ‘지지하지 않음’이 40%로 ‘지지’ 37%를 뒤집었지만, “납치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대북 지원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아베 총리의 결정에 대해서는 81%가 이를 “평가한다”고 응답했다. 아베 총리 자신을 포함해서 정부 관계자의 미묘한 자세 변화에 대해서는 납치문제 관계 그룹들로부터는 경계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경직된 여론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종래의 강경 방침을 어떻게 전환해서 납치문제에 일정한 ‘진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아직은 명확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주로 예상되는 북-미 교섭에 북-일 교섭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일본은 대미 ‘압력’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납치문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조처를 취할 경우 일본의 입장은 결정적으로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배수진이 대북 교섭론으로 크게 기울기 시작한 미국을 붙들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앞으로 수개월간에 걸친 6자 회담의 움직임, 그 속에서 북-일 교섭, 그리고 납치문제가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정권의 향방을 좌우할 큰 요소가 될 것은 분명하다. 6자 회담의 ‘초기단계 조처’가 아무런 성과를 보이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지면 ‘강경파’ 아베 정권은 또다시 ‘북풍’을 타고 기사회생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고이즈미 총리와 같은 전격적인 북-일 교섭이 실현되면 이 경우도 또한 중요한 성과로 과시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의 계절에 들어 한-미-일 모두 대북관계의 향방이 국내 정치와 직결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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