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08 18:36
수정 : 2007.03.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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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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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 일이 다시 상기되는 것을 본인들은 쑥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삼십대 초반의 청년이던 장희창 교수는 1987년 재직하던 부산의 한 사립대학에서 해직당했다. 그는 86년 봄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한 대학교수 시국성명 발표 당시, 재직 대학에서 이 일에 앞장섰다. 교수들은 대통령을 선거인단 간선제로 뽑게 돼 있던 5공 헌법을 고쳐 국민이 직접 선출토록 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 당연한 일에 동참했던 그는 그 직후부터 대학 당국한테 시달림을 받다가 끝내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그가 대학교수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가깝게 여기던 동료에게 회식 자리에서 가벼운 기분으로 한 말과 행동이 ‘품위 없음’의 사례로 찍혔다. 대학 쪽은 교수를 해직시키면서도 그가 민주화를 요구했다는 것을 근거로 대지 않고 ‘품위 없는 교수’라는 이유를 댐으로써 인간적 모멸을 더했다. 얼마 후 대학에서는 입시부정이 있었고, 장 교수와 함께 시국성명에 동참했으나 대학에 남아 있다가 부정에 항의한 두 교수도 마저 해직당했다.
그 후 제기한 복직소송에서 이들은 계속 패했고 한국사회의 어떤 제도권 기관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직 뒤 20년 만인 지난해 복직을 할 때까지 학원 강사로, 프리랜서 번역가로 사는 동안, 이들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생각해 보자. 독재정권에 저항한 교수들과 그들을 내쫓은 대학, 어느 쪽이 품위 상실의 주역인지.
서울 쪽 한 대학에 재직하다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교수가 복직소송 2심에서 패했다. 그는 대법원에서도 판결 번복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2심 담당법관과 옥신각신하다가 상대에게 상해를 입혔고, 이 때문에 형사범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월요일에 첫 공판이 있었다. 그가 재직 대학의 수학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했다가 미움을 받아 재임용에서 탈락했음은 대한민국이 다 안다. 그런데 대학 쪽은 인간적 갈등에서 빚어진 몇 사례를 극단화시키고서 그를 ‘교수 품위를 떨어뜨린 인물’로 몰아 해직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대학이란 데가 그렇게 품위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은 아니다. 성추행자도 있고 소위 ‘또라이’도 없지 않다. 정작 이런 사람들도 대학이라는 강자의 비위만 거스르지 않으면 무사하다. 조직 이기주의 아래 보호받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철칙의 대척점에 선 인물이었고 해직이 그 대가였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종교재판을 주관한 교황청과 학문적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갈릴레이, 이 둘 가운데 인간의 품위에 치명타를 가한 쪽은 누구일까. 갈릴레이는 극한 상황을 피하고자 자기 학설을 일시적으로 철회했다지만, 김 교수는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법원에서는 종교재판 때 같은 극한 상황이 없으리라 믿었기에 변호사도 없이 혼자 법리를 따져가며 재판에 임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 자명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여기리라 믿었다. 그러나 법원은 그를 인간적으로 모욕한 강자의 정의를 수호했을 뿐이다.
만약 법관 재임용제도로 법관들도 함부로 해고된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변호사 개업이라는 출구가 없다면, 법관들은 ‘내 탓이오’라고만 여기고 이를 받아들일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 대한수학회는 김 교수 해직을 두고 지금껏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10년도 넘게 제도권에서 버림받은 채 유랑 세월을 살아 온 그의 큰 울음소리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석궁이 등장했다. 소속 연구자가 학문적 양심을 수호하려다 고통받을 때 학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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