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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15 18:38 수정 : 2007.03.15 18:38

이윤재 코레이 대표

세상읽기

한반도와 미국은 지리적으로 참 멀다. 그러나 남이든, 북이든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의 판단과 행동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긴장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역사적 체험이기도 하다. 1905년 태프트-가쓰라 비밀조약을 통한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 인정’과, 1945년 8월 ‘38선 남북분할 결정’이라는 미국의 두 가지 행위는 한반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지난주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의 뉴욕 방문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북-미 사이에는 2000년 10월, 북한 군부의 조명록 차수가 백악관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하는, 한층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조명록 차수를 만난 다음, 바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낸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과 핵개발, 미사일, 외교관계 등 양국 사이 주요 현안에 대해 매우 실질적인 합의에 접근했고, 마침내 일괄타결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추진한다. 그러나 클린턴은 결국 평양에 가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클린턴의 방북이 무산된 이유다. 올브라이트의 회고록에 의하면, 임기 말 클린턴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은 한반도가 아니라 불거진 중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고, 그쪽 결말이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평양 방문의 시기를 놓치게 된다. 다른 제약은 없었다. 당시 대통령 당선자인 부시 진영에서는 ‘미국의 대통령은 어느 때나 한 사람’이라며 오히려 클린턴의 북한 방문을 지지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어쩌면(우리에겐 기억도 나지 않는) 중동문제 때문에 그의 평양방문과 양국관계 정상화가 무산되었고, 그 이후 한반도는 이전보다 더 큰 불신과 불안의 터널에 빠져, ‘2·13 합의’에 이르기까지 6년 반의 세월을 허송하며 ‘북한 핵실험’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사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판단이나 행동이, 치밀하고 일관성 있는 한반도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로는 미국 자신의 우선순위 또는 우연한 요소들에 의해 얼마든지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우선순위는 북한 핵과 미사일 기술의 외부확산 차단과,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국가화 억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이라는 우리의 기대나 희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하듯, 미국 역시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며, 아무리 초강대국이고 패권국가라 할지라도 유럽이나 중동이나 일본에 앞서 한반도를 최우선시해야 할 책임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친미, 반미 또는 용미의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결국 한반도의 평화는 남이건 북이건 미국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고, 미국이 해결할 숙제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표면적으로 남쪽은 ‘자주’의 개념을, 북쪽은 ‘주체’의 개념을 내세우고 한반도 문제의 주도적 해결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안한 전시 군작전권 이양을 군사주권 회복으로 착각하며 국방비 증액을 통해 ‘자주국방’을 하겠다는 남쪽이나, 미국의 인정과 ‘협박’을 통해 정권안정을 담보 받겠다는 북쪽의 선군정치나, 미국에 의지하려는 내심은 다를 바 없다.

‘2·13 합의’를 실천하려는 북-미 직접대화는 고무적이지만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한반도 평화는 미국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머리를 맞대야 찾아진다는 사실을 남과 북이 새삼 상기할 때다.

이윤재 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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