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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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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지율 저하로 곤경에 처한 아베 총리가 강경 자세로 정면 돌파를 꾀하고 있다.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사죄를 거부한 발언도 같은 맥락에 있다. 취임 직후에는 막연한 기대치와 더불어 한국, 중국과의 외교관계 개선 등 현실주의적 정책이 평가되면서 70%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누렸다. 그러나 각료들의 잇따른 불상사와 실언, 개혁 자세의 후퇴, 측근들의 경험 부족과 정권 운영의 미숙, 총리 자신의 리더십 부재로 지지율이 하락을 거듭해 지금은 평균 40% 선을 밑돌기 시작했다. 몇몇 조사에서는 ‘지지하지 않음’이 지지를 웃돌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자민당 쪽으로 끌어모은 젊은 세대 부동층의 지지가 급속하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간판’으로서의 기대가 총리가 된 기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베 정권으로서는 심각한 사태다.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한 리더십의 과시, 그리고 전통적 지지층인 우파의 동원이 기본적 전략이 된다. ‘아베 컬러’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관점에서 교육, 역사, 개헌의 세 가지 쟁점을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중 교육은 교육기본법의 개정에 이어 교육 현장과 교사에 대한 국가의 관여 확대를 초점으로 하는 각종 개혁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국내정치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끌어모으기에는 쟁점이 분산적이며 직접적인 정치적 효과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역사와 개헌이라는 쟁점은 선명한 대립축을 설정할 수 있어 좀더 큰 지지동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애초 아베 정권은 당면한 관문인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현실주의 노선의 ‘안전운행’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참의원 선거를 주도해서 승리를 거둔 뒤 강화된 정권 기반을 토대로 본연의 과제로 천명해온 ‘전후체제의 극복’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자주헌법 제정, 군대 보유의 합법화와 국외 파병의 상설화, 나아가 평화헌법적인 역사인식의 수정 등 우파의 오랜 숙원 과제들은 장기 정권 기반을 다져 나가는 과정에서 실현해 간다는 구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지율 하락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와 개헌 카드의 동원은 아베 정권 자신에게도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이념적으로 분열적인 쟁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전통적 지지층의 결속 효과를 웃도는 부담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장 군대위안부를 둘러싼 발언은 사죄 결의안을 추진 중인 미국 의회와 여론을 자극하면서 국제적으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거센 비판에 직면해 일단은 ‘고노 담화’의 계승을 재확인한다는 선으로 후퇴했지만, 국제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이 되풀이되면 아베 총리의 리더십은 더욱 상처를 입을 뿐이다.
한편 개헌 문제의 공세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개헌을 위한 절차법인 국민투표법 제정을 둘러싸고 작년 이래 야당인 민주당과의 사이에 차이점을 좁히기 위한 협의가 계속되어 왔음에도, 아베 총리는 여당 단독으로라도 헌법기념일인 5월3일까지 제정하겠다는 강경 자세를 천명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반대로 일단 강행 방침은 철회했지만 이번 국회 회기인 6월 말까지 처리한다는 방침은 유지하고 있다. 일단 상정되면 여야 격돌은 불가피하며 직후의 참의원 선거에도 커다란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반면에 계획을 포기할 경우 또다시 아베 총리의 일관성과 지도력에 의문이 제기되게 된다. 6자 회담이 큰 진전을 보이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둘러싸고 큰 외교가 전개되는데도, 일본에서는 당분간 ‘내향적인 정치’의 계절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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