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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7 17:35 수정 : 2007.03.27 17:35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세상읽기

오늘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과 지향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빠른 산업화·민주화·정보화를 자랑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가 중 세계에서 가장 앞선 발전을 이루었다. 거기에는 개인과 사회를 지배해온 유일가치, 즉 “잘살아 보세”로 대표되는 경제발전의 기저담론이 존재했다. 참여정부 출범 시점에도 우리는 기업 주도로 ‘2만 달러 담론’이 사회갈등, 빈곤, 양극화, 실업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을 본 바 있다. 오늘의 상황을 볼 때 ‘2만 달러 달성’은 해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3만 달러는 해법이 될까?

한국적 삶은 지금 양극화, 실업, 빈곤, 주택, 물가, 환경과 같은 외면지표에서 너무 힘에 겹다. 생활수준 대비 부동산과 물가는 이미 세계 최악 수준이다. 안전과 범죄, 교육, 자살, 살인, 유괴, 저출산율, 여가, 행복지수와 같은 삶의 내면지표 역시 절대 통계는 물론 세계와 비교하기조차 겁난다. 저출산율은 세계기록마저 경신하였다. 여성과 아이들은 항상 최소 안전을 염려하고 있고, 빈발하는 연쇄살인은 생명 경시의 누적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젠 자식이 부모를, 부부가 서로를, 급기야는 아버지가 어린 딸을 살해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자살의 경우 자살률과 증가율 세계 1위에, 절대 수치로도 44분에 1명-매일 33명, 1년에 작은 군 인구의 3분의 1에 이른다. 희망의 나이인 20대의 사망원인 역시 1위가 자살이다. 반생명화, 반인간화의 조류가 우리의 성공의 한 귀결인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이 절망적 지표들을 개인적 일탈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 행복지수의 세계 비교 조사에서 우리 자신이 한국을 항상 하위그룹에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집합적 사회구조와 심성형태의 한 압축적 표출인 것이다. 헝가리의 거장 산도르 마라이는 “성공은 언제나 수상한 것”이라는 역설적 잠언과 함께 그때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반생명화와 반인간화를 수반하는 우리의 성공은 이제 근본을 성찰할 지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성공의 방식을 수정할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우리를 이끌어온 것은 경쟁과 시장 논리였다. 민주화 역시 시장화에 다름 아니었다. 오늘날 시장주의·시장화는 과거의 반공주의와 군사주의처럼 한국 사회의 모든 개인과 조직을 규율하는 도전불용의 가치요 담론이 되어가고 있다. 시장의 힘은 사회의 모든 곳에 넘쳐나며, 국가의 정책 역시 미리 시장의 반응을 의식하여 채택된다. 급기야는 육아·교육·의료·복지처럼 국가 공동체가 개인에게 제공해야 할 최소 의무마저 시장 논리에 내맡겨지며, 출생과 함께 사회로부터 탈락하는 시민이 속출하고 있다. 시장화가 원초적 반인간화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일군의 민주주의 이론들은 민주화의 목표를 인간화·인간해방으로 압축하여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적 지표들은 민주화가 반인간화로 질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공 자체가 인간 공동체의 내면적 해체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놓쳐왔던 것이다. 인간화로의 길은 시장화가 아니라 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장국가를 넘어 고르고 넉넉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국가의 수립을 말한다. 행복지표의 최근 세계 비교 조사는 유럽 사회국가들의 사회적 성취가 제공하는 개인적 행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큰 방향을 바꿔 이제 국민총생산(GN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 1인당 지엔피가 아닌 1인당 지엔에이치를 말하자. 시장적 성공을 넘어 사회적 성취를 말하자. 개인적 행복은 사회적 행복과 결코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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