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
세상읽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지금 완강한 찬반 대결구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찬반 양극을 넘어 훨씬 복합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복합적 중층성은 무엇인가?첫째 동북아 국제관계 차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중국의 적극적인 한-중 자유무역협정 체결시도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중 관계 개선’이 양자택일 구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미·중 양자택일 논리는 이제 ‘옛것’이 되었다. 일본의 반응 역시 동북아 국제관계의 기축이었던 미-일 관계에 대해 한-미 관계가 경쟁관계로 상승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미 관계가 미-일 관계의 종속 위치를 벗어나 동북아 협력과 평화를 위한 일본 견제의 방법을 함축한다. 가장 큰 변화는 남북 관계다. 과거였으면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한-미 관계 강화는 북한으로부터 미제 식민지화라는 격렬한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한-미 동맹은 남북 적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역외가공지역 지정에 최종 성공한다면 한-미 관계 강화가 남북 관계 개선 및 북한 경제회복에 기여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포용정책의 효과로 한-미, 남북 관계가 선순환 관계에 돌입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북한엔 남한을 발판 삼아 세계 진출과 경제발전을 이룰 기회가 될지 모른다.
둘째 한국사회의 세계대면·세계화 차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에서 보듯 세계화 논리가 주장해온 사회정책적 대책과 전망은 거의 맞지 않았다. 양극화, 실업, 농업, 고용, 약자 배려, 삶의 질 … 오이시디 가입 10년의 통계는 세계화와 사회정책의 충돌을 보여준다. 특히 부문별 산업별 이익과 손해는 명백히 갈려 이제 ‘국가 이익’의 증대가 ‘국민전체 이익’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글로벌 기업의 주식 구성은 주로 해외자본이기에 성장이익의 해외유출은 더 심화될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도 고착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체제로서의 자유무역협정은 법률과 규제의 미국화, 특히 미국 법률화를 통해 민주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국내의 규제와 법규 철폐를 강조해온 주장들은 미국식 규제와 법률에 대해서는 외려 수용과 적응을 강조한다. 그럴수록 (한국의) 경제·시장·기업에 대한 (한국) 민주주의와 국민국가의 긍정적 역할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오이시디 가입 이후 민주정부들의 경제·사회정책 실패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정부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는 과정과 결과의 민주주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상이한 이익과 견해 사이의 대화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협정 체결과정에서 민주적 결정과정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익과 손해의 차별적 귀결과 사회정책의 실패가 증명되었음에도 손해부문의 국민에게 다시 희생하라는 요구는 민주정부와 사회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부정하는 행위다. 대화와 동의는 두 레벨의 네 차원에서 필요하다. 한-미 두 정부, 각각의 행정부와 입법부, 정부와 국민, 그리고 부문과 부문, 이익과 이익 사이를 말한다. 뒤의 세 대화 역시 첫째만큼 필수적이다. 이 대화들을 모두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결과로서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노무현 정부의 자유-보수 연합이 노동과 민중 포용을 통해 성장과 복지를 함께 달성한 유럽의 선진 사회국가 경로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가 진정 의문이다. 그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격 및 사회체제의 전망에 직결된다.
양자택일 구도에서는 둘 모두 해답이 아닌 경우가 많다. 소통을 위한 대화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체결하되, 신중한 사려와 상호 대화, 미래사회 모습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체계적인 준비 이후에 체결하여도 늦지 않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