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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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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4월 중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일본을 방문했다. 중국정부의 수뇌로서는 2000년 10월의 주룽지 총리 방일 이래 6년반 만이다. 그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반발로 중국은 수뇌의 방일을 거부해 왔다. 작년 10월 초 취임 직후의 아베 신조 총리에 이어 수뇌의 상호 방문을 활성화함으로써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악화된 양국관계의 수복을 과시한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났다.특히 중국 쪽의 적극 자세가 두드러졌다. 원자바오 총리 자신이 “아베 총리의 방중이 중-일 사이 얼음을 깨는 역할을 한 것이라면 자신의 방일은 얼음을 녹이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원 총리의 일본 국회 연설은 중·일 양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이 또한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 정부의 배려이기도 하지만 중국 쪽의 강한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 국내 여론에 대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명확히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국회연설 내용도 “일본 정부 및 지도자가 거듭 표명한 역사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며, “중국의 개혁 개방과 근대화에 대한 일본의 지원을 잊지 않는다”는 등 대일 유화발언이 이어졌다.
2박3일이란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전략적 호혜관계’ 제창, 고위급 경제대화틀 신설, 에너지 절약과 환경분야 협력 강화 등 굵직한 가시적 ‘성과’와 더불어 조깅과 문화유적 방문, 대학팀과의 야구 교류 등 일본 사회의 여론형성을 의식한 ‘홍보외교’도 정력적으로 폈다. 그 직후 도쿄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서 자리를 같이한 중국 관변 학자들은 ‘대성공’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의 큰 관심을 엿보는 듯했다.
중국의 대일 접근의 가장 큰 요인은 경제협력, 특히 환경분야의 지원과 기술협력이다. 중국 경제의 활기를 유지하자면 일본의 계속적인 투자가 필수적인 것이다. 좀더 장기적으로는 대일관계를 강화하고 일본을 지역내 파트너로 끌어들임으로써 미-일 관계를 상대화하려는 전략도 지적되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논의되어 온 전략적인 대일 중시론이다. 한편에서는 미-일 동맹 강화에 맞서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하고, 러시아·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일종의 ‘유라시아 대항 동맹’의 견제 세력화를 모색하면서도, 미·일과의 충돌을 극력 피하고 관계 강화를 중시하는 실리외교가 두텁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일본도 단순하지는 않다. 중국의 미소외교에 적극 호응해서 나름의 실리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합법화하고, 이를 토대로 미-일 동맹의 군사적 일체화를 한층 높은 단계로 제도화하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략과 실리가 교차하고 갈등과 협조가 공존하는 글로벌 시대 특유의 국제정치 역학이 한반도 주변에 소용돌이치고 있다.
중-일 관계에 견주면 한-일 관계는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원 총리의 방일 직전에 있었던 한-일 외무장관 회담도 서울이 아니라 멀리 제주에서 열렸다. 현안의 하나인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못하고 역사문제로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고 한다. 역사문제의 거론을 꺼리고 한국의 선거를 기다리는 아베 내각의 소극자세가 배경에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중외교 쪽 배려와는 대조적인 자세다. 조만간 발표될 한-일 역사공동연구의 진용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우경화’하는 일본과의 관계 설정은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초기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큰 틀의 실현과 추진 속에서 한-일 관계를 재정립하는 전략적 시각과 노력이 또다시 긴요해진 시점을 맞고 있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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