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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3 18:46 수정 : 2007.05.03 18:46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세상읽기

벌써 일년이 되었다. 1980년 광주 이래 처음으로 군인이 투입되어 평택 대추리라는 조그만 마을을 접수한 지 꼭 한 해가 지났다. “하던 논갈이나 계속하게 해달라는 쉰 목소리”도 아랑곳 않고 “철모에 군화에 군장에 곤봉에” 군사작전 펼쳐내며 그 들판에 철조망을 치고, “칠십 평생 눈물이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농수가 필요 없이 눈물이 농수가 되”게 만든 그날이 작년 이때다.

이 비극은 2002년 3월 주한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이 체결될 때부터 시작한다. 정부는 이 협정을 체결한 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이전지를 평택으로 확정하였고, 1년 뒤에는 이를 미군의 요구대로 500만평으로 확장하였다. 여기서 굴욕적이고 위헌적인 협정이라는 시민사회의 비판이나 “뭉툭한 다리로/ 들판만 지키고 있”던 주민들의 항거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였다. 정부는 마치 동북아 지역에 주한미군의 전진기지를 확보해 주는 것만이 국가가 할 일의 전부인 양 협정 비준에서부터 토지 확보와 주민 추방에 이르기까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눈 한번 크게 안 뜨고/ 황소처럼 그저 일만 했”던 주민들을 내쫓고 “땅에 굴 파고 짚 깔아 지내며/ 세월을 개간”하면서 일구어낸 농토들을 빼앗으며, 미국의 새 안보전략과 그에 기반한 해외미군 재배치 계획에만 봉사하였던 것이다.

이에 국가의 폭력과 억압을 이기지 못한 주민들을 떠나 보낸 이 작은 마을은 지난 4월의 매향제를 매듭삼아 장장 5년에 걸친 저항의 서사를 역사의 기억으로 접어 나간다. “먹고 죽을래야 쌀 한 됫박 없었지만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우마차로 흙을 퍼 날라 운동장을 다져” 나가며 만든 대추분교조차 사라진 지금, “평화와 자유의 깨알 같은 염원”도, “외지인을 맞는 살가운 인심”도, “서해 노을”도, “솔부엉이”도, “평화동산”도, “이곳을 다녀간 가수들의 비가와 시인들의 슬픈 격문”도, 하나씩 둘씩 비겁한 우리의 의식 한켠에서 시나브로 스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공선옥 작가는 “이제 다시 한번 관건은 평화와 존엄이다”라고 선언하지만, 2007년 봄의 현실은 되레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변태하며 되살아나는 악몽으로 가득하다. 무력이 평화와 등치되고 경제가 존엄과 동격이 되는 세상에서는, “쌀미 자 같은 여든여덟 살을 먹고 본께/ 촛불 농사도/ 지어 보는구나”라는 탄식에도 불구하고 그 촛불 농사조차 “이 생애 마지막 농사”가 되지 못한다. 용산기지 이전협정에서 익힌 대국민 기만전술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그대로 반복하며, 대추리 들판을 점령하던 특수부대의 군사작전식 폭력행사를 제주도에서도 똑같이 행사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위력 앞에서는 “그렇게 몸으로 평화와 존엄 고갱이를 가르쳐 줄” 곳 하나 찾아내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올해 5·18엔 광주에 가지 않으리”라는 외침은 절실하다. “넓힐수록 좋은 것은 이런 평등 평화의 마음이지, 전쟁기지가 아”니며, 없는 이 등쳐서 있는 자 배불리는 짓거리는 더더욱 아닌 법이라 “갈라선 마음 이어붙이며/ 내릴 때는 촛불 하나씩 건네자”는 경구가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당신이 정말 삶의 방식이 평화롭기를 원한다면, 생존하는 방식이 존엄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평택에 가보라.” 비록 이제는 빼앗긴 땅이 되었지만, 그곳을 스치는 바람은 아직도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는 믿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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