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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8 17:30 수정 : 2007.05.08 17:30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세상읽기

지난번 칼럼(4월18일치)에 대해 한 번 더 써달라는 분들이 많았다.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격앙을 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조금 깊고 복합적으로 다시 접근해보자.

먼저 남북 관계의 차원이다. 과거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는 ‘동맹’과 ‘적대’가 비례하는 부정적 쌍생아였다. 따라서 반미와 친북 이념이 민족주의를 고리로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개성공단의 역외가공지역 지정문제에서 나타나듯, 친미와 친북이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이 될 경우 북한 경제와 남북 관계는 크게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을 고리삼아 ‘한미’와 ‘남북’과 ‘북미’가 만나는 구도를 맞아 반미=친북 등식을 고수해온 1980년대 민족해방노선(NL)과 급진민족주의 노선은 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

둘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한 개방화의 문제이다. 한국은 개방경제를 지향하며 오랫동안 빠른 성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부정적 효과 역시 그만큼 크게 받고 있음도 사실이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이후 10년간의 통계를 보자. 우선 한국은 전체 3위(4.3%)의 성장률을 기록해, 오이시디 선두권을 달렸다. 그러나 소득격차, 노동시간, 복지비용은 꼴찌이다. 개방화가 전혀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교육과 의료마저 철저하게 시장과 개인에 맡겨져 있다. 공교육 지출 23위에 사교육 지출은 1위, 전체 의료지출 28위에 사적 지출은 3위이다. 이 통계들은 급속한 개방화와 시장화 속에 한국 민주정부들의 사회정책이 실패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할이 더욱 축소될 자유무역협정 이후 민주정부가 이를 실현한다는 말은 사실일까?

셋째는 민주적 과정의 문제이다. 우선,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노동문제나 사학법 개정 문제보다 작기 때문에 훨씬 짧게 토론하고 밀어붙였던 것일까?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들 모든 문제를 합친 만큼이나 크다. 이익의 차이가 클수록 더욱 많이 토론하여 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다음으로 자유-보수 연합을 통해 체결해놓고 체결 이후에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한 자유-진보나 자유-민중연합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연합은, 특히 사회경제적 이익에 기반한 정치연합은 형성 이후 분명한 제약조건과 가능조건을 물려주기 때문에 민주주의 장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점에서 금번 ‘에프티에이 연합’의 거시적 영향은 너무도 분명하다.

넷째는 한-미 관계와 각각의 국내정치 두 차원에서 나타나는 북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이중 착종이다. 북핵 문제에 강경한 공화당 정부 때문에 한국의 진보는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를 기대하였다. 반대로 보수는 공화당이나 네오콘의 북핵 강경노선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 문제는 정반대로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 훨씬 더 강경하다. 북핵 문제마저 부시 정부가 전환하자 두 문제 모두에서 공화당이 온건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북핵과 자유무역협정, 두 핵심 의제에서 한국과 미국 국내정치의 조합이 정반대일 때, 또 급변할 때 우리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관성적 반미와 친미에 익숙한 우리의 진보와 보수는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중심고리 삼아 ①북한·남북관계·민족주의 ②세계화·개방화와 삶의 질 ③민주주의 ④한미관계와 국내정치의 네 차원에서 차례대로 살펴본 복합적 지형과 구도는, 한국사회가 20세기 진보 및 20세기 보수와는 이제 깔끔하게 절연할 때가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둘을 넘어 우리는 새로운 무엇을 과연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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