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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3 18:03 수정 : 2007.06.03 18:03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세상읽기

전문 연구자를 제외하면 우리 사회에서 거의 잊혀진 헌법적 기본권이 있다. 그것은 1948년 건국 헌법에서 규정된 뒤 1960년 헌법까지 유지되었으나 5·16 쿠데타 이후 제3공화국 헌법에서 삭제된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이다. 조문을 옮기자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均霑)할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이 권리는 노동자의 임금청구권이나 사원주주가 가지는 이익배당 청구권이 아니다. 이 조항은 사기업의 경영자는 월급 이외에도 회사 경영으로 축적한 이익을 근로자에게 분배해야 하는 의무를 지며, 국가는 근로자에게 이러한 이익분배의 청구권을 보장해 주어야 함을 뜻한다.

얼핏 보기에 ‘급진적’으로 보이는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은 좌익 노동운동이 아니라 우익 노동운동의 요구에 따라 헌법에 자리를 잡았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대한독립촉성 노동총연맹’이 노동자의 기업경영 참여와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이 포함된 8개항의 ‘노동헌장’을 제시한다. 이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자의 기업참여 방안은 부결되고,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은 채택되어 헌법 속에 포괄되었다.

만약 현재 어떤 사람이 노동자의 기업경영 참여와 노동자의 이익균점을 주장한다면 기업가단체와 보수진영으로부터 ‘빨갱이 정책’, ‘기업 죽이기’라는 비판을 받들 것이다. 이들의 경우 현행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으니, 그 이상의 권리 보장 요구는 ‘불온’한 선동으로 들릴 것이다. 상상컨대 1948년 당시 ‘노동헌장’을 주창했던 우파 노동운동의 거두였던 전진한 의원이 현 시대에 돌아온다면 ‘새로운 우파’를 주장하는 후배들에게 ‘좌파’로 매도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이 과거와는 다른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한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자처하는 삼성은 언제까지 노조 결성을 훼방하는 전근대적 모습을 보일 것인가? 임금협상 결렬은 총파업으로 이어지고, 이에 대하여 기업은 노조 간부에 대한 업무방해죄 고소 및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로 맞서며,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의 투쟁이 재개되는 순환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정치적·사회적 역량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제 노동운동의 존재를 무시하는 기업경영은 비현실적이다. 기업도 노동자의 창의적 제안과 생산적 비판을 경영에 반영하고, 생산성 향상 등 노동자의 기여에 대하여 임금 이외의 방식으로 보상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를 단지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을 파는 ‘하인’으로 취급하지 말고, 기업 발전의 동반자이자 기여자로 대우할 때 기업의 지속적·안정적 발전도 보장될 것이다. 이 점에서 1948년 ‘노동헌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실천적 의미를 던지는 ‘오래된 미래’일지 모른다. 그리고 여러 역대 민주정부가 시도하였다가 실패했던 노·사·정 간의 ‘사회대협약’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으로 정치권에 소동이 일어난 뒤 개헌은 다음 국회의 과제로 넘어갔다.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켜 사회적 자원의 소모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이후의 개헌논의에서 5·16 쿠데타로 삭제된 노동자의 이익균점권과, 60년 전에 한국 노동계의 선각적 요구사항이었던 노동자의 경영참여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우리 앞에 새로이 놓인 과제는 경제적 민주화이며, 이상의 두 가지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의미 있는 법적 장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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