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
세상읽기
한국사회에선 지금 시장의 가치와 논리가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사익 추구를 기본으로 하는 시장주의는 시장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넘어, 모든 영역으로 시장가치의 확산을 바라는 시장 만능주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민주주의는 특권과 권력과 힘의 소재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상이한 가치 사이의 대화는 기본요소가 된다. 공적 영역 역시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 그 때문에 대화가 봉쇄될 때 민주주의는 소멸하고, 전체주의와 독재로 나아간다. 오늘날 시장 만능주의 비판과 교정노력은 즉각 급진좌파·사회주의로 낙인찍힌다. 대화의 차단이다. 시장주의가 자기 모태인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대화 부정의 시장전체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오늘날 한국사회의 중심 균열은 시장주의 대 사회주의, 수구 대 급진이 아니라 시장주의 대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몇몇 사례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축도라 할 만하다. 첫째 <시사저널> 사태는 시장의 영향이 언론의 논조·기사 게재와 삭제는 물론 언론사와 기자의 생존문제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주와 광고(주)의 영향이 막대한 신문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시장능력, 곧 광고와 후원(능력)의 크기가 공적 영역에서의 힘·담론·가치의 크기를 좌우하는 우려할 광고주 민주주의, 후원자 민주주의 단계에 돌입, 시장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공공영역까지 시장화·사사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김승연 사건은 자연인 재벌 총수의 개인적 폭력 사건에 법치주의가 어떻게 유린되고, 기업의 공적 조직과 인원들이 개인범죄를 위해 어떻게 사적으로 동원되며, 끝내 국가 공공조직(경찰)이 기업 사익에 따라 어떻게 무력화·사사화·부패화하는지를 상징한다. 셋째,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 영역의 법률과 규제는, 법률들 자체가 충돌적임에도 철저히 준수하라고 요구하면서도(법치주의·헌정주의), 시장영역의 규제와 법률은 철폐하라고 소리를 높인다.(반법치주의·반헌정주의) 시장 전체주의에서는, 과거의 전체주의처럼, 형평성을 생명으로 하는 법치주의마저 이중 기준을 요구한다. 하여 한국사회 욕망의 양대 요소인 부동산과 교육에서 불법과 위장을 반복한 개인조차 법과 도덕을 희화화하며 국가 공공지위를 넘보고 있다.
불평등이 낳는 급진혁명을 차단하고자 1인 1표를 고안해, 민주주의(공적 영역)에서의 평등과 공화주의를 통해 시장적 불평등(사적 영역)을 완화하고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끝내 급진주의의 근거를 해소했던 근대 부르주아의 지혜조차 버린 한국형 시장 전체주의가 크게 안타깝다. 시장경제의 보호자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결코 급진적이지 않았던 두 지성의 경고를 통해 인간적 사회를 향한 깊은 토론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자. 최근 유작에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기업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제에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다. 이때 ‘경제’는 ‘사회’나 ‘국가’로 상승 가능하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로 불린 한나 아렌트의 경고는 더 두렵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고통을 완화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일 때면 언제든 나타날 전체주의 해결방식은, 전체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에도 강력한 유혹의 형태로 생존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공공영역마저 무력화·사사화하려는 금일의 시장 전체주의가 또다른 전체주의를 안내하는 통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수차 위기에 직면했던 자본주의 역사를 경험한 뒤 “(시장의) 모든 자유를 추구하다가는 아무 자유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던, 근대 공화주의자들의 역설적 시장경제 사랑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