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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6 17:35 수정 : 2007.06.26 17:35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세상읽기

3월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4월, 5월, 6월 민주혁명에서도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벅찬 가슴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태극기는 민주 시민들을 하나의 뜻으로 묶어준 고귀한 정신이었으며, 애국가는 총과 탱크에 맞설 수 있는 용기이고 무기였다. 그러나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한 독재자의 의자 옆에도 어김없이 태극기는 꽂혀 있었다. ‘우리 밖의 타자’와 생사를 건 싸움을 할 때는 하나였던 태극기가 민주와 반민주라는 두 개의 깃발로 찢겨진 것이다.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과 저항의 힘은 지난 10년 동안 민주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안겨줬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탄생하면서 반민주 세력이 흔들던 깃발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색깔이 변한 것이었다. 지역 패권주의에 기초한 군사주의가 시장지상주의와 성공이데올로기로 변색한 것이다. 이처럼 상대가 변색의 기술로 생명력을 키우는 동안 두 민주 정부는 이미 죽어버린 반민주의 무덤에 침을 뱉으며 시장권력에 편입된다.

‘정치는 민주주의, 경제는 시장주의’라는 참여정부의 나침반은 처음부터 시장에 의한 정치의 식민화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권력은 정부가 아닌 시장이 가지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2년 전 발언은 초국적 시장권력 앞에서의 신앙고백이었다. 이때부터 참여정부는 국가전체를 초국적 자본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무한경쟁사회로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이처럼 정치가 전 세계를 아무런 제약 없이 횡단할 수 있는 자본에 종속되면서 사회복지 체계는 기초도 마련하기 전에 해체되고, 하층민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몰락의 항구적 위협에 노출됨으로써 국민통합의 원천이 고갈된다.

초국적 시장권력을 장악한 특권계급에게는 국민의식이 없다. 나라가 망해도 탈주를 즐기며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정당을 찾아 길들인다. 더구나 이들은 언론권력과 지식권력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계급의식을 국민의식으로 포장해서 유포시킨다. 문제는 시민과 민중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자기의식을 상실하고 국민의식으로 포장된 특권층의 계급의식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태극기에 대한 맹세가 특권계급에 대한 충성맹세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주인의 계급의식을 자기화한 노예처럼, 백인의식으로 무장한 흑인처럼, 국민의식에 사로잡힌 대중은 결국 시장권력의 노예가 된다. 민주주의의 적은 계급의식이 아니라 노예의식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성공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국민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국민은 생각이 같은 덩어리지만, 민주주의는 생각이 다른 시민들이 만나 소통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뜻을 모으고 실현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시민과 민중이 노예의식을 버리고 투철한 자기의식을 가질 때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민주화될 수 있는 것이다.

민중의 꿈이 자식 출세에 있는 한,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고시 합격자 배출을 자랑하는 경축 플래카드는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비루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서민·빈민, 하청·비정규직·이주노동자와 실업자는 민중의식을, 소외여성과 대기업 노동자를 포함한 중산층은 시민의식을 국민의식으로 포장해서 유통시킬 수 있는 정당을 찾아야 한다. 지금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은 그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정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연정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두 정당은 이미 큰 차이 없는 하나의 정당이다. 그들이 흔드는 시장의 태극기가 아닌 새로운 태극기, 시민과 민중의 자기의식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나부끼는 정당이 필요하다.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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