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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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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처음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한 별에 새 세상을 건설하려는가 보다. 인터넷이 처음 일반에 공개됐을 무렵 가상세계는 뉴 프런티어로 여겨졌다. 외모와 나이, 성 등으로 규정되는 육신의 세계와 달리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맘껏 누리는 기회의 땅. 아름다운 별과 같은 세상.“상상해 보라, 우리가 아무리 탐욕을 부려도 자원이 고갈되지 않으며 탐험가들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끝없는 기회가 펼쳐지는 세계, 개발하면 할수록 더 확장되어 나가는 특이한 세계를.”(〈인터넷권력전쟁〉 39쪽)
존 페리 발로가 1990년대 중반에 쓴 글이다. 사이버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인터넷을 현실권력에서 독립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을 미국 정부로부터 빼앗아 오려는 시도가 좌절되면서 동력을 잃어갔다.
그래도 인터넷 서비스 곳곳에 그들의 정신은 녹아들어 있다. 인터넷 카페도 그중 하나다. 지리적 격리를 뛰어넘어 같은 관심사로 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공동체 시민들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이곳의 시민들은 너무 많은 관계가 배어 있는 성명을 버리고 닉(별명)을 쓴다. ‘불량곰탱’, ‘파워그놈’, ‘배추벌레’, ‘버즘나무’와 같은 닉에서 닉의 주인을 전혀 떠올릴 수 없다.
관심사는 카페 이름에서 보듯 다양하다. ‘은샘이네 초보요리’, ‘고무신’(사랑하는 사람을 군대에 빌려준 사람들의 모임), ‘청주에 사는 엄마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
이곳에서는 오직 헌신과 관심 분야에 대한 전문성, 압축하면 내공으로 명성이 축적된다. 직업과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카페는 한국적 현상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1500만 개가 넘는 커뮤니티가 있다고 말하면 깜짝 놀란다. 네이버 카페의 회원 수만 1800만 명이다. 큰 카페에는 100만, 200만 명의 회원이 있다.
가히 인터넷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카페는, 그런데, 사이버자유주의자들의 이상에 걸맞지 않게 비민주적이다. 카페를 만든 운영자에게 제왕적 권한이 있다. 카페 운영자는 카페에 부적합한 행동을 한 회원을 추방시킬 수도 있고 게시물도 삭제할 수 있어 표현의 자유조차 빼앗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운영자에게 부여된, 모든 게시물의 관리와 운영의 책임에 상응하는 권한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거리의 카페에서와 같다. 카페 주인은 행패 부리는 손님을 퇴장시킬 수 있고 시끄럽게 떠드는 손님을 조용히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카페는 순식간에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는 차 마시는 카페가 아니다. 공동체에는 회원들이 운영에 참여하는 자치의 원칙이 필요하다. 운영자로서는 열심히 일해서 카페를 키워놓으면 자신의 권한을 내놓아야 하는 모순적 숙명에 빠지는 것이다.
분쟁이 종종 일어난다. 네이버의 고객센터에는 운영자의 직무를 정지시켜 달라는 요청들이 접수된다. 카페 서비스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나로서는 답답한 마음이다. 일일이 개입할 수도 없지만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이나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물리적 강제력이 없다. 회원들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 2006년 6월 네이버 카페 ‘행복이 가득한 집’의 분쟁에서는 운영자가 이겼고, 그리고 일년 뒤인 올해 6월에는 다음 카페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분쟁에서는 회원들이 이겼다. 그것을 ‘쿠데타’로 부르는 댓글들이 있었다.
사이버자유주의자들의 이상은 전면적으로 구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별처럼 우리를 꿈꾸게 하는 상상력의 원천이 될 거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홍은택 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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