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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9 17:42 수정 : 2007.07.29 17:42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세상읽기

열흘 전 여수지역 노동자문화제가 지에스(GS)칼텍스 공장 앞에서 열렸다. 여수지역 노동자와 문인, 문화운동가들이 시와 노래와 춤을 통해 연대의 뜻을 다지는 자리였다. 1990년대 이후 노동자와 문화예술인이 함께 모일 기회가 많지 않아서인지 처음엔 서로 어색해했다. 교수가 노동자들의 삶을 얼마나 이해한다고 그 자리에서 시를 읽느냐는 자격지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랜드 사태를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즈음이라 가서 응원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사실 그 자리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었고, 노동자도 이제 먹고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았느냐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도로 바닥에 주저앉아 얘기를 나누면서 확인한 노동현장의 실상은 언론의 보도나 풍문을 통해 듣던 바와는 상당히 달랐다. 예를 들어, 2004년 파업 당시 지에스칼텍스 노조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임금인상이 아니었다. 부당해고 및 징계 철회,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정규직화, 주 5일제 실시를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발전기금 조성 등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기업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무였다. 이런 요구는 노동운동을 임금투쟁에서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문제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과 거대자본은 이들의 파업을 연봉 7천만원이 넘는 귀족노동자들의 이기적인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함으로써 강제진압과 사회적 비난을 유도해내는 데 성공했다. 얼마 전 지에스칼텍스 노조의 파업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회부 결정이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물론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고, 해고 노동자의 복직과 사면 역시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와 손잡은 신설노조는 해고 노동자들을 노조에서도 제명해 최소한의 생계보장마저 끊어졌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지에스칼텍스 노조 파업에 대한 재평가와 해고자의 복직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문화제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면서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해고 노동자의 아이들이 무대에 나와서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던 표정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였다. 지에스칼텍스뿐 아니라 해고되거나 구속된 전국의 노동자들에게도 저런 눈물 어린 자식들이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어쭙잖게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맑은 눈동자들에 웃음을 되찾아주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졌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놀라운 통계를 발견했다. 노동인권을 외치다 구속된 노동자가 김영삼 정권 시절 632명, 김대중 정권 892명, 노무현 정권 들어 966명(2007년 6월30일 기준)으로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와 평화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정권일수록 구속 노동자가 많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이랜드 사태만 보더라도, 정치인들조차 그 책임이 기업과 정부에 있으며 비정규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지금 노동계에서는 8·15 특별사면을 맞아 구속된 노동자와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에는 부디 사면명단에서 재벌 총수들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름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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