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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1 17:55 수정 : 2007.08.01 17:55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세상읽기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는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 살해당한 두 생명은 물론, 나머지 인질들이 당하고 있을 극한의 고통은 멀리 있는 우리마저 간절히 기도하게 한다. 우리 국민을 두고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를 절망케 한다. 김선일·윤장호씨에 이은 연속적인 비극은 한국민들의 삶이 ‘전쟁상태의 지구화’, ‘불안의 세계화’라는 21세기 세계사의 한복판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가장 평화로웠다는 탈냉전의 1991년부터 9·11 테러가 있은 2001년 사이조차 세계에서 57건의 ‘전쟁상태’가 발생해 무려 360만명이 숨짐으로써 ‘세계 전쟁상태’ ‘세계 불안상태’의 현실을 상징한다. 우리는 이미 이라크·아프간·레바논 파병을 통해 세계 전쟁상태에 깊이 개입해 있다.

개항 이래 한국민들은 오랫동안 세계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왔다. 특히 최근 들어 국외선교·조기유학·여행의 폭발을 통해 세계진출의 절정을 맞고 있다. 아프간에서의 비극은 한국교회봉사단원 납치로 비롯되었다. 한국교회는 지금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기독교를 다시 세계로 수출하는 선두에 서 있다. 한국은 선교사 수 세계 2위, 인구비율로는 세계 1위의 선교 대국이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사각지대인 ‘서울에서 예루살렘 사이’마저 복음화하려 중국·북한·동남아·중앙아시아·이슬람 지역에서 의료·교육·원조·봉사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전쟁상태와 한국교회 세계 진출의 만남이 사태의 배경을 이룬다고 해도 민간 봉사단이 폭력의 대상이 되어선 결코 안 된다. 더구나 이번 봉사단은 친아프간 정부, 반탈레반과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에 대한 만행은 결코 동의받지 못한다. 유사한 지정학적 위치로 말미암아 아프간 못지않은 침탈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민들은 전란상태에 있는 이슬람 형제들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린 이미 형제이며, 이슬람 형제들과 다만 사랑의 정신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폭력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드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확산=반이슬람의 첨병국가’로 인식되어 이슬람권과의 대결국면으로 접어드는 일이다.

지금은 갇힌 생명을 살려내는 데 혼신을 다해야 한다. 가장 먼저, 아프간 방문을 포함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결단을 촉구한다. 한국인 출신 총장으로서는 물론, 재임 초 최대의 국제 인권사안을 맞아 반 총장은 즉각 나서야 한다. 둘째 정부는 미국-아프간정부-탈레반 사이에 낀 위치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와의 연대나 이슬람권 지도자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포함한, 주도적 해법의 도출을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한다. 끝으로 시민사회는 이번 사태가 이슬람 일반에 대한 미움으로 전화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탈레반의 납치와 살상은 이슬람 교리와는 관계없기 때문이다. 특히 봉사를 할 때조차 상처를 주지 않도록 끝까지 섬김과 공존의 미덕을 견지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은 테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옳지 않듯, 전쟁을 통한 인권·평화·민주주의의 확산 역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프간과 이라크의 혼돈이 보여주듯 미국이 주도한, 전쟁을 통한 테러근절과 민주주의 확산정책은 실패하였다. 인류는 이제 문명간 대화, 빈곤 해소와 같은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안할 때가 된 것이다. 뿌리를 제거하지 않은 채 가지를 친다고 궁극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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