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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2 17:53 수정 : 2007.09.02 17:53

홍은택/NHN 이사

세상읽기

한국인 피랍자들은 돌아왔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프간 전쟁은 끝난 줄 알았다. 그것도 5년 10개월 전인 2001년 12월에.

미국에는 전쟁에 대한 신화가 있다. 이른바 깨끗한 전쟁(clean war)이다. 이 신화는 미국의 국민들이 타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지지하게 만드는 심리적 배후로 작용하고 있다. 깨끗한 전쟁에는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도덕적으로 명분이 있고, 자국의 피해가 적으며, 그리고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세계2차대전이 그 신화의 원형이다. 나치 독일의 증오로부터 유럽을 구원한다는 명분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큰 인명 손실 없이 이겼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렸다.

한국전쟁은 미국 내에서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린다.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닌 이상한 승부였기 때문이다. ‘잊혀진’이라기보다는 ‘잊고 싶은’ 전쟁이었던 것이다. ‘깨끗한 전쟁’의 신화를 지켜내지 못한 해리 트루먼은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했고, 2차대전 승리의 주역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된다.

이 신화는 베트남 전쟁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공산주의화 저지라는, 미국 내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명분이 있었으나 인명 손실이 컸고 이기지 못했다. ‘깨끗한 전쟁’의 신화는 퇴색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을 격퇴한 91년 제1차 걸프전쟁은 그 신화를 부활시켰다. 당시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을 히틀러에 비유했다. 히틀러는 2차대전에 대한 국민의 기억을 동원할 수 있는 키워드였다. 최초로 <시엔엔>을 통해 안방에 실황중계된 전쟁이기도 했다.

아프간 전쟁은 9·11 테러 이후 불과 15일 만에 단행됐다. 명분은 빈 라덴을 추방하거나 체포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탈레반 정권이 거부했다는 것. 범죄 용의자 은닉 혐의였다. 충격에 빠진 자국민에게 분노를 배출할 대상을 제공해야 할 측면도 있다. 그것이 테러와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미국 언론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절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전쟁이라고 비판했다. 제2의 베트남전이 될지 모른다는 시각에서였다. 이전의 역사를 보면 아프간은 ‘침략자의 무덤’이었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에 따르면, 그 무덤에 미국은 중앙정보국(CIA) 요원 110명과 특수부대원 316명, 그리고 공중 전력만 집어넣고 반군이었던 북부동맹군을 조종해 승리로 이끌었다. 과도정부가 수립됐고 미군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아프간 침공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던 미국의 지식인들은 앞다퉈 자신들이 과거의 틀에 갇혀 있었다고 고백했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아서 슐레진저는 베트남전의 악몽을 상기시키며 비판한 것을 반성하며 “내 예상이 틀린 게 기쁘다”고 말했다. 언론의 신뢰도는 떨어졌고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깨끗한 전쟁’이 가능하다는 게 다시 확인되는 듯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아프간전의 승전으로 미국은 9·11 테러와 무관한 이라크로 밀고 들어갈 여론의 지지를 확보했고, 언론은 이를 견제할 권위를 잃었다.


그 결과는 누구나 다 아는 지금의 현실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수렁에 빠졌고, 미국이 이라크로 가는 징검다리였던 아프간의 상황도 동시에 악화되고 있다. ‘깨끗한 전쟁’이 결코 아니다. 나는 앞으로 미국이 상당 기간 군사적 개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압도적 공중전력을 갖고 있는 강대국으로서는 ‘깨끗한 전쟁’의 신화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인 것 같다.

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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