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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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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늘이면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결과가 발표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아마도 천정배 의원의 통과 여부일 게다. 천 의원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주자 중 가장 분명하게 이 협정에 반대해온 사람이다. 여당의 원내대표와 현 정부의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 25일간의 단식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정부에 맞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런 그가 당내 경선, 그것도 예비경선 탈락을 불안해할 정도라는 소식은 많은 이들을 실망케 했다. 그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가 천 의원의 대선 완주 과정을 통해 주요 선거 현안으로 부상되길 기대했다. 그래야 좀더 심각하고 진지한 범사회적 공론화 작업이 가능해질 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늦게나마 도출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저간의 이러한 사정은 필자의 다소 발칙한 상상력을 돋웠다. ‘4당 체제로 가는 것이 어떠한가?’천 의원 등 범여권 쪽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걱정하는 이들의 입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세계화나 자유무역협정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반대하는 것은 양극화의 심화 등을 초래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수단으로 쓰일 경우의 자유무역협정이다. 세계화나 경제통합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충분히 보장되는 조건을 구비해 가면서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견해는 유럽의 통합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이른바 ‘진보주의 세계화론’이다.
한국의 현 정당체제에서는 진보주의 세계화론자가 갈 곳이 없다. 민주노동당은 반세계화론이 주류인 당이다. 한나라당의 주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론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 이슈에 관한 한 분명 ‘잡탕정당’이다. 굳이 뭉뚱그려 평가하자면 ‘좌파 신자유주의’ 정당이다. 신자유주의가 대세이므로 그것을 따라가되 사회투자 등을 확대하여 심각한 부작용만은 막자는 정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이 대세에 해당하므로 일단은 찬성할 일이고, 그에 따르는 사회경제적 폐해는 사후에 해결할 문제쯤으로 치부한다. 민주당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어느 당도 진보주의 세계화론자는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인 중에는 진보주의 세계화론자들이 이미 상당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본인들의 진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따라서 만약 아니라면 미리 용서를 구하지만)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유력 정치인만도 천 의원 외에 김근태 의원, 신기남 의원, 임종인 의원 등이 있다. 최근 대선 주자로 나선 문국현씨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비교적 세심한 외부 관찰자의 판단으로는 그 외에도 분명 많은 정치인들이 이들과 같은 입장에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이 예의 그 상상으로 이어져 ‘4당 체제’에까지 이르도록 한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통합 이슈를 단일 기준으로 하여 기존 정당들을 편의상 좌에서 우로 열거할 경우 민주노동당은 제일 왼쪽, 한나라당은 제일 오른쪽,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을 성격상 같은 정당으로 볼 경우 그 당은 양당 사이에서 비교적 한나라당에 가까운 어느 지점에 위치시킬 수 있다. 진보주의 세계화론자들이 자리할 곳은 그 셋째 정당의 왼쪽과 민주노동당의 오른쪽에 남아 있는 빈 공간이다. 그 큰 공간 중의 어느 한 지점이 필자의 상상이 가리키는 네 번째 정당의 위치다.
과연 상상은 끝이 없는가 보다. 이 글을 쓰는 사이 필자의 상상은 어느새 17대 마지막 정기국회에 가 있다. 거기서 네 번째 정당의 (예비)구성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상상일 뿐일런가?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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