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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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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탈레반 인질 사태가 종결되었다. 그간 공격적인 선교 행태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왔지만 풀리지 않은 쟁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선교 방식을 바꿔 봉사활동에 중점을 둔다면 사정이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문제의 종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논의를 일반론으로 심화할 필요가 있다. 국외봉사를 한다는 것은 국제 민간단체, 즉 국제 엔지오 활동을 하겠다는 말과 내용상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선교단체가 엔지오 또는 그 비슷한 형태로 전환되더라도 또다른 차원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인도적 동기에서 출발한 일반 국제 엔지오들도 특정한 사회발전 모델, 자본과의 관계 설정, 개발 원조금의 출처를 둘러싼 논란, 단체의 투명성과 책무성에 관한 긴장, 현지 문화와 사회상황에 대한 부정적 영향력 등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래되고 경험 많은 세속 엔지오들도 이러한데 선교단체들이 여론에 떠밀려 하루아침에 외양을 바꾼다고 해서 실제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나아가 선교냐 봉사냐 하는 차원을 넘어 나의 신념과 행동을 외부 세계의 타자에게 전파하려는 의도와 행위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문제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몇 가지 점을 먼저 짚어 보자.첫째, 선교단체를 포함한 민간조직, 즉 비국가 행위자들이 국가의 관할권을 벗어나 공식 영역이 아닌 곳에서 활동공간을 늘려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단체가 이런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국제결사체연맹의 통계를 보면 2004년 현재 국제 엔지오만 약 32만4천개가 있으며 이 순간에도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을 흔히 지구시민사회가 확장되고 있다고 표현한다.
둘째, 비국가 행위자들의 국제무대 진출은 지구화 추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단순히 신앙심과 열정만으로 국외로 나갈 수는 없다.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 통신과 교통수단, 자원배분과 지원체계, 세계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는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점들은 알게 모르게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동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맹위를 떨쳤던 식민지배 관료-장사꾼-선교사를 엮는 연결고리가 오늘날에 국제기구-다국적기업-구호·개발·선교 엔지오로 대체되었다고 볼 만한 여지가 존재한다. 선교든 봉사든 개발지원이든 모든 형태의 개입은 그것이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깊은 차원에서 강자와 약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현지인들이 외부의 도움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응답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남는 본질적인 문제다.
셋째,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확고한 원칙처럼 생각되던 세속적 근대국가 체제의 절대 우위에 민간이 점점 더 도전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개신교 일각이 한국 정부에 선교활동과 관련된 영역에서 손을 떼라고 ‘감히’ 요구하고 나섰던 일이 좋은 사례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번 인질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민간부문에서 선교·봉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지구시민사회적 활동이 앞으로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불어난 국력과 지구화의 연계성을 고려하면 필연적인 일이다. 우리의 영향력을 국외로 확산하려는 시도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고민해야 할 만큼 이제 우리도 덩치가 커졌다. 우리의 행동이 상대에게 권력의 작용-반작용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예민하게 인식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자신을 상대화해서 성찰하고, 시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자세로 타자와 만나지 않는 한 이번 사태와 유사한 성격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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