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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9 19:02 수정 : 2007.09.09 19:02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세상읽기

한달 전쯤 박원순 칼럼 ‘나에게 나라를 맡겨 준다면…’을 읽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 글에 인용된 이름 없는 예비후보들의 공약이 오히려 유명 예비후보들의 공약보다 더 구체적이고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았더니, 당적을 가진 예비후보 37명과 무소속 예비후보 75명을 합해 모두 112명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컷오프 경선이 끝났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경선이 남아 있으니 이 숫자는 얼마간 유동적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112명의 예비후보들 중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정치인은 이십여 명에 불과할 뿐, 나머지는 대부분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농부, 청소부, 회사원, 택시기사, 청원경찰, 목사, 승려, 역학원장, 노동자, 주부, 가수, 작가, 사회복지사 등 직업과 학력도 다양했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사람들이 대통령에 입후보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동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내게는 그들의 출마가 단순히 독특한 신념을 가진 개인의 선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현상을 우리 사회의 변화와 관련지어 설명해 보자. 첫째,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더 이상 절대적 권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둘째, 정치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기실현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개인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직업정치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의 표현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출마를 결심한 저변에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관행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내가 정치를 해도 그보다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대니얼 조지프 부어스틴은 한 사회의 창조적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적으로 ‘전문직업의식’과 ‘관료주의’를 들었다. 전문직과 관료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폐쇄적인 통로를 만들고, 그것을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용하거나 분배한다. 부어스틴은 그 굳어진 틀을 깨고 전환할 수 있는 잠재력을 ‘발견자’와 ‘아마추어’에게서 찾았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무언가 처음 시도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길을 쉽게 터주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발상이나 제안은 현실 논리와 게임의 규칙을 모르는 문외한의 망상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이제까지의 경선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우리나라 선거는 철저히 직업정치인들만의 잔치와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국민경선이지 여론조사의 53%가 무응답이라는 사실은 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과 냉소적 반응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유명한’ 후보는 많지만 ‘유능한’ 후보는 없는 현실에서, 후보들은 누가 더 이름값을 올리느냐에만 열중하고 있다. 악명과 악담이라도 정치적 화제가 될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이전투구에 뛰어들고, 정당이나 정책과 상관없이 이해관계만 맞으면 합종연횡을 마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세속의 더러움과 몸을 섞으면서 하는 것”이라는 한 후보의 말은 우리의 정치풍토를 씁쓸하게 환기시킨다. 이것이 정치경력 5년 만에 터득한 전문가적 식견이라면, 이 땅의 정치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너무 일찍 잃어버린 셈이다. 처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마음과 뜻, 아마추어 정신이 그것이다. 지금이라도 후보들은 정치판을 어떻게 움직일까를 고민하기 전에 척박한 현실의 구조를 어떻게 바꿀까를 궁리해야 할 것이다. 그 답은 서민 후보자들의 소박한 공약 속에 더 절박하게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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