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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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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주 통계청은 ‘2007 대한민국 행복테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저해하는 첫째 요소로 ‘남편 역할의 부족’을 꼽으면서, ‘가사분담의 리모델링’을 ‘행복테크’로 제시했다. ‘테크’로 행복을 찾자는 발상은 어색하지만, 여성의 가사노동 문제는 그냥 지나쳐 버릴 사안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 중요한 시대적 이슈임에 틀림없다.보고서를 보면, 맞벌이 가구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6.5배이고,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32분으로 맞벌이가 아닌 남성보다 1분밖에 길지 않다. 곧 평균적으로 남편은 아내가 돈을 벌려고 집밖에서 일을 하든 않든 집안일을 거의 돌보지 않는다. 가사노동과 수입노동을 합친 맞벌이 여성의 노동시간(8시간42분)은 남성(7시간6분)보다 23%가 길다. 여기에 상용직 여성근로자 임금이 남성의 63% 수준이고, 여성 취업자의 4할이 임시-일용직이라는 통계를 대입하면, 맞벌이 여성의 노동 대가가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계산이 금방 나온다.
가정은 남성에겐 ‘쉼터’지만 여성에겐 ‘일터’다. 맞벌이 여성이 직장노동이라는 한 가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가사노동이라는 또다른 근무가 기다린다. 미국의 여성 사회학자 혹쉴드는 이것을 ‘곱빼기 근무’라고 부른다. 그는 ‘제2의 교대근무’라는 책에서 가사분담이 얼마나 여성에게 치우쳐 있는지, 그 결과 맞벌이 여성들이 얼마나 극심한 긴장과 피로로 살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가사를 분담하더라도, 여성은 부엌일이나 청소처럼 매일 해야 하는 ‘지저분한’ 일을 하고, 남성은 자동차 수리처럼 시간 선택이 자유롭거나 아이를 공원에 데리고 가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쾌적한 일을 한다. 우리는 어떨까. 한국 남성들의 가사노동시간이 미국 남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을뿐더러, 가사분담 내용의 선택권이 미국 남성보다 훨씬 일방적이리라 추정한다면, 우리 맞벌이 여성들의 가사노동 압박이 얼마나 엄청날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아실현과 생계를 위해 앞으로도 여성 취업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만일 현재처럼 가사노동을 둘러싼 성차별이 계속된다면, 맞벌이 여성들의 가정생활은 임계점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이미 취업여성이 어깨에 짊어진 일상의 무게와 스트레스는 결혼 상태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전통적 인습을 지탱하기에 벅차다. 최근 이혼과 ‘비혼’ 상태가 늘고,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벌써 상당수 여성들이 과중한 노동과 긴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기존의 가정’을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이처럼 여성에게 치중된 가사노동 압박을 해결하지 않은 채 ‘국가적으로’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는 발상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녀의 가사분담 모델을 바꾸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통계청 보고서처럼 ‘(어떻게) 하자’는 권유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 직장 속의 뿌리 깊은 근무관행과 남성 개개인의 가치관과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전담하는 전업주부를 전제로 하는 오늘날 직장의 남성위주 근무 패턴과 지배원리, 비공식적인 관계와 문화가 모두 달라지고 다시 구성되어야, 남성들이 ‘쉬러’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일도 휴식도 나눠하기 위해’ 퇴근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의 조직과 문화가 그런 길로 옮겨가고 있으며 남성들이 이에 동의할 것인가. ‘변화한’ 여성과 ‘변하지 않는’ 남성과 직장, 이 갈등이 풀려야 우리의 미래가 열린다.
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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