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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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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얼마 전 참석한 한-일 미래포럼의 세미나에서 한국과 일본이 인터넷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고 한다. 후보자나 정당 이름이 쓰여 있는 인터넷상의 콘텐츠, 홈페이지, 블로그 등의 화면을 선거공고일 이후 갱신할 수 없다. 2005년 8월 민주당이 당 대표의 유세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총무성의 경고를 받았고, 그 뒤로 한동안 어느 당도 시도하지 않았다. 지난 7월12일 ‘사건’이 일어났다. 자민·민주 양당이 참의원선거 공고일에 아베 총재와 오자와 대표의 첫마디를 웹에 게재한 것. 총무성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양당은 이후 몇 번 더 유세내용과 공약을 웹에 게재했다. 일본 언론은 사실상 ‘인터넷 선거 해금’이 이뤄졌다며 대서특필했다.대통령선거 출마 예상자들이 블로그나 카페를 개설하고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서 보면 그것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고 할 만하다. 2002년 대선에서는 인터넷의 위력을 목도한 바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인터넷이 ‘역동성’과 ‘열림’의 키워드이지만 일본에서는 ‘경계의 대상’이다. 일본에는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없기 때문에 개방할 경우 익명의 글쓰기를 허용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중상모략과 비방이 판칠 우려를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일본의 포털인 <야후 재팬>이나 <아사히>, <요미우리> 등 언론사 사이트에는 기사 댓글난이 없다. 한 참석자는 댓글을 여론의 반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이용자의 연령 분포만 해도 특정 세대가 과다 또는 과소 대표되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는 댓글난 없는 언론사나 포털 사이트가 없다. 이용자들의 적극적 참여 의지를 말해주는 특징이다. 또는 이용자들이 적극 참여해야 할 만큼 사회나 기사에 문제들이 많거나.
그러나 댓글이 과연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한 양식으로 뿌리내렸는지는 의문이다. 악성 댓글의 폐해를 떠나 즉자적·즉시적·즉흥적인 속성으로 말미암아 댓글난은 건강한 소통보다는 감정 표출의 공간으로 쓰이곤 한다. 정보의 수용자들이 정보 생산자가 주는 대로 정보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비하면 댓글 자체는 발전한 표현양식이다. 문제는 이 양식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대표적 역기능이 ‘밀어내기’라고 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소수가 행사하는 표현의 자유가 다수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거나 침해하는 현상이다.
댓글 화법은 발랄하고 톡톡 튀고 때로는 촌철살인의 간결미가 있는 반면 보통 거칠고 자극적이고 냉소적이고 정파적이다. 시간이 갈수록 후자의 화법이 댓글 공간에 똬리를 틀면서 전자의 화법을 밀어낸다. 아이들은 후자의 화법을 배우게 된다.
미국 <야후닷컴>은 연초 댓글을 닫으면서 목청 큰 소수가 토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5월에 ‘웹의 사람들’이라는 토론장을 새롭게 열면서 여전히 기사 댓글은 열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토론장에 글을 올리고 싶은 사람도 <야후닷컴>이 심사해서 쓸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아니다. 토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인 듯하다. <야후 재팬>도 한달에 294엔을 내는 유료와 특정 회원들에게만 의원 평가에 대한 글쓰기 권한을 부여한다.
쌍방향성과 개방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은 한국에서는 통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으면서 의미 있는 토론이 전개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털 운영자로서는 쉽지 않은,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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