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10.11 17:53 수정 : 2007.10.11 17:53

이윤재/코레이 대표

세상읽기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으며 산다. 헌법은 그 믿음을 지켜주고자 양심의 자유(제19조)와 종교의 자유(제20조)를 보장한다. 지난 한 달 동안 이 자유와 인권을 확장하려는 두 가지 움직임이 있었다. 하나는 지난주 강의석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이고, 또 하나는 9월18일 정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 추진 방침이다.

앞의 것은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 안에서 종교의 자유를 신장하려는 움직임이다. 2004년 고등학생이던 강의석씨는 예배참석 강요에 저항하다 제적당하자 퇴학처분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그가 대학에 입학한 2005년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것으로, 법원은 다시 그의 편에 섰다. 판결에서 선교를 이유로 한 학습권 침해의 부당성이 인정됨으로써 앞으로 약 250곳에 이르는 종교재단 설립 고등학교의 종교나 의식 강요는 줄어들 것이다.

뒤의 것은 이른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에 대해서도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움직임이다. 대부분이 여호와의 증인인 이들은 이제까지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대가로 실형을 살아야 했으나 앞으로는 군대 아닌 다른 공적복무를 통하여 병역을 대신 이행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정부 발표대로 추진되면, 이들은 2009년부터 치매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수발처럼 힘이 많이 드는 사회서비스 분야에서(현역병보다 상당히 오랜) 일정기간 복무함으로써 병역의무를 대체하게 된다.

이렇듯 두 사건 모두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를 진일보시키는 바람직한 사건이다. 특히 대체복무제 추진 방침은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철저하게 외면하고 방치해 온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정부가 최초로 진지한 해결 노력을 보였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3761명이 새로 생겨났고, 현재 전세계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수감자 900여명 중 830여명이 우리 감옥에 갇혀 있다. 김두식 교수의 <평화의 얼굴>을 비롯하여 그들 병역 거부자의 고난과 대체복무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책과 글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의 이 두 가지 움직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상충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강의석 소송사건’에 대하여는 종교의 자유가 승리한 것이라며 찬성하던 사람들이,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서는 국가안보와 병역의 형평성을 앞세우며 반대하거나 시기상조라 비판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국가안보나 ‘반공 이데올로기’ 같은 절대적 개념 또는 상위 개념을 인권보다 높게 둠으로써, 자유와 인권을 보편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많은 보수 기독교인들은 사학법 개정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 거부에 대해서는 보호해야 할 종교의 자유로 인정하기보다 이단을 부추기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응징해야 할 행위로 바라본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 보수 기독교인의 권력과 여호와의 증인들의 권력 차이가 그들이 누리는 종교의 자유 수준을 좌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유의 내용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권력’의 자유로 변질된 것이다.

사회적 계급, 이해, 권력관계에 따라 차별화되는 ‘자유’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인권은 다르다. 강자와 기득권층의 자리에서 옹호되고 지지되는 선택적 ‘자유’는 약자에겐 오히려 억압이 되기 일쑤다. 과연 그 ‘자유’가 누구를 위한 권리이고 언어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할 이유다.

이윤재/코레이 대표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