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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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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자신을 최고의 ‘경제대통령’감으로 평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책임질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처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시장에 맡기자’이다. 시장의 자유를 보장만 해주면 대부분의 경제 문제는 시장 기능에 의해 스스로 풀려 가리라는 믿음이다. 이른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이 체제에서는 국가의 시장 개입은 늘 최소한에 머문다. 당연히 민영화, 규제완화, 시장개방, 감세 등이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룬다. 바로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를 의미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매우 유용한 정책수단으로 쓰일 것이다. 소위 ‘외부충격요법’에 의한 한국 사회경제 구조의 신자유주의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안보나 평화 이슈로 이번 대선의 대립구도를 명확히 나누기는(적어도 현재까지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 후보가 경제대통령론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현명한 선거 전략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에 맞설 후보들 역시 차별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자유시장’에 맞서려면 그 기조는 ‘조정시장’ 경제체제여야 할 것이다. 이는 국가나 사회의 개입과 조정으로 시장의 폭력성을 통제함으로써 양극화의 심화나 비정규직의 급증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조정시장 체제의 종류는 다양하다. 조정의 영역과 그 기제가 넓고 강력할수록 자유시장 체제와 거리는 벌어진다. 물론 그 거리가 멀수록 한나라당과의 대립각은 첨예해질 것이다. 그러나 먼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능한 한 많은 시민들의 지지가 모이는 지점에 서야 한다. 그 최적 지점을 찾아내는 일, 즉 가장 적당한 조정 범주와 기제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방지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사정과 정서에 맞는 노동, 복지, 조세, 교육, 환경, 산업, 개방 정책 등이 서로 정합성을 유지하며 하나의 패키지로 마련돼야 한다. 이는 개인이 아닌 정당 차원에서 장기간의 시행착오 등을 거쳐 완수해 가야 할 까다로운 과제이다. 설령 특정 후보의 정책공약이 부분적이나마 뛰어나 보일지라도 그것이 ‘족보 있는’ 정당의 이념과 정책기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실현 가능성을 신뢰하긴 어렵다고 보는 이유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에 맞설 정당들은 민주노동당 말고는 급조 정당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이 그렇고 창조한국당이 그러하다. 어느 당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선명히 나타내는 정책 패키지나 자기 완결성을 갖춘 조정시장 구상은 없다. (언제 변할지 모를) 후보의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민주당을 포함하여 이른바 범여권 대선연합을 형성한대도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체계적인 경제체제 구상에 합의하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내놓지 않는 한 그들의 후보 중심 연합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지금대로라면 이번 대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자들 외에는 매우 답답한 선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형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양당의 구상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며 그 중간쯤의 어느 지점이 적당하리라고 생각하는 상당수 국민들은 대안 부재 상황에서 헤매야 할 것이다. 이 답답함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범여권의 목표가 후보 단일화에 그쳐선 안 된다. 정책 단일화, 그게 힘들면 적어도 당장은 주요 이슈 영역에서 정책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된 정책정당 만들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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