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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8 18:57 수정 : 2007.10.18 18:57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세상읽기

얼마 전 속리산 법주사에 다녀왔다. 인권교육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려한 속리산 자락의 2차선 국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도로는 새로 깐 길처럼 깨끗하고 노면 상태도 좋았다. 멀리서 사람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니 농사짓는 분이 아침부터 지게에 무언가 한 짐 가득 지고 길 옆을 걸어가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지게 진 농부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이 우리 차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농부가 차를 피하려고 하다 무게중심을 놓쳐 잠깐 비틀거렸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지만, 그제야 내 눈에 국도의 아스팔트 길 옆에 사람 다닐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에 사람 다닐 틈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차가 가해자였고 보행인은 호소할 데도 없는 피해자였다. 이 작은 ‘사건’으로부터 내가 근대화의 비인간성, 석유산업과 자동차산업과 관료주의가 합작한 폭력성을 생생히 깨달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전국적으로 보행자가 자동차 탄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네 배나 더 많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

그런데 전국의 거의 모든 국도 사정이 이럴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전에도 나는 차가 다니는 도로와 그 곁을 움츠리고 걸어가는 행인의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을 터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날 따라 차를 피하려 하던 농부의 모습이 유별나게 보였던 것일까?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보행권에 대한 신문연재 기사를 열심히 읽었기 때문이었다. 곧, 보행권에 대한 ‘의식화’의 기초를 습득했고, 내가 평소에 불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적극적인 권리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에 눈을 뜬 상태에서, 지게 진 농부가 자동차에 ‘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나는 통제되지 않고, 보행인의 관점에서 구성되지 않은 자동차 문명과 도로건설 행정이, 실은 인간을 찍어 누르는 거대한 억압 권력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게 작동하는, 또는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는 반인간화의 한 표상임을 직시할 수 있어야겠다. 그것을 깨달으면 안전한 보행권이야말로 인권의 핵심인 생명권이요,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온다. 솔직히 말해 보행권 확보를 위한 투쟁은 눈에 보이는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의 관성화된 삶의 양식에 대한 싸움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어디 가나 대선 국면에서 시민사회 운동이 어떤 몫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말이 많이 들린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위기 국면임을 에둘러 표시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시민사회 운동이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의 형편은 전반적으로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원인과 처방을 찾아봐야 한다. 한 가지만 말한다면, 우리 시민사회 운동이 민주화 운동 이래 제도 또는 구조의 문제와, 삶의 문제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전통을 고수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따라서 보행권과 같은 문제는 말로는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자잘한’ 생활의 이슈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세상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가분의 원리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실천할 때가 되었다. 굳이 보행권을 예로 든 것도 그런 연장선에서였다. 모든 억압권력은 서로 통하는 법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모든 대항권력은 결국 서로 만날 수 있다. 시민사회 운동이 크고작은 모든 형태의 억압권력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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