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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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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이념논쟁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논란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북방한계선 등장, 본질과 관련한 역사적 진실, 둘째, 노무현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논란의 성격, 셋째, 북방한계선 문제 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해법이 그것들이다. 첫째 북방한계선은 영토선인 적이 없었다. 특히 정전협정이나 남북 합의에 의한 해상 경계선은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정전협정 당시 쌍방이 합의한 육지 및 한강 하구와 달리 서해상에 해상 경계선이 없어서 1953년 8월30일 유엔군사령부가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남방’한계선(SLL)이 아니라 ‘북방’한계선이다. 즉 통일의지에 불타는 이승만 대통령을 제어하기 위한 계선이었다. 동시에 북한 봉쇄를 위한 클라크선(1952.9.27∼1953.8.27)이 정전협정 위반(제2조 15항)이었기에 이를 대체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요컨대 북방한계선은 북진의욕 제어와 안전보장을 위해 한-미 상호방위조약 및 대한 군사원조와 함께 남한에 일종의 패키지로 제공된 것이었다. 곧 ‘대남’ 통제선이자 ‘대북’ 안보선이란 이중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러한 북방한계선을 두고 일찍부터 도발을 감행했다. 서해교전 당시 국방부가 발표한 <서해5도 주변해역 북한 주요 도발 일지>를 보면, 북한은 1956년 이래 무장침입, 납치·납북을 수시로 감행해 왔다. 62년 12월23일에는 교전을 통해 남쪽 6명의 사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곧 북한이 73년 이전에는 묵인·묵종·준수를 통해 북방한계선을 인정해 왔다는, 따라서 국제법상의 영토라는 일부의 주장을 국방부 자료는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물론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 역시 결코 옳지 않다.한국 사회에서 진실 공방은 과잉 정치화, 이념화와 함께 곧바로 사실과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 세 대결과 이념논쟁으로 전화된다. 따라서 누가 옳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목소리가 큰가, 누가 더 많이 담론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가로 옮아간다. 진실 역시 보수적 진실과 진보적 진실로 나뉜다. 그러나 북방한계선의 경우 오늘의 논란 이전에 실제로 둘은 하나였다. 정전협정에서 미결정 영역으로 남아 있던 해상경계 및 북방한계선 문제는 민주화 이후 네 정권 두루 중대 사안이었다. 그런데 직접 격돌한 김대중 정부를 제외하면, 다른 세 정부의 보수와 진보를 넘는 정의와 합의는 동일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노태우 정부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에서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북한과 합의했다. 김영삼 정부의 국방부 장관은 96년 국회에서 “엔엘엘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선” “엔엘엘 침범은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 “넘어와도 상관 없다”고, 마치 북한의 주장처럼 답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려 김영삼 정부 시절 국방부의 견해보다 온건한 것이다. 즉 세 민주 정부 사이에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처의 차이는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남북기본합의서, 김영삼 정부의 해석, 그리고 이번 10·4 정상회담으로 돌아가면 된다. 중요하게도 유엔군 사령부는 91년의 남북기본합의와 이번 10·4 공동선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남한의 진보와 보수,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이 세 역사적 계기를 관통하는 정신과 접점이야말로 바로 ‘남한 내부’의 이념 갈등과 ‘남북 사이’의 북방한계선 문제를 해결하는 요체라 할 수 있다. 마침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북방한계선을 넘어 아예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고 시사하여(10월10일 <와이티엔> 특별대담) 헌법 3조·4조·69조, 국가보안법 2조를 한꺼번에 위반하는 급진성, 위헌성 또는 공존 지향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당선된다면 북방한계선 논란은 먼 옛날 일이 될지 모른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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