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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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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번주말로 국정감사가 끝난다. 예년처럼 감사일정의 파행과 의원들의 우격다짐, 그리고 피감기관의 술자리 대접이 기억될 뿐, 이번에도 국정감사가 국정운영 개선의 바람직한 계기가 되었다는 뉴스는 만나기 어렵다. 이는 12월 대통령 선거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또 보지 않으려는 이 나라 정치 현장의 무책임한 세태와 함께, 더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국정감사의 관행과 제도 자체가 지닌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국정감사는 1972년 유신독재와 함께 폐지되었다가 ‘민주화’ 이후 88년에 부활되었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우리 사회는 국정감사를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평소 국회활동에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마침내 국회의 본격적인 활동이 개시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모든 민주국가 의회의 보편적 권한이 아니라 우리 국회만 거의 유일하게 가진 특이한 제도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의회는 법 제정이나 예산 심의 같은 기본적 권능행사에 필요할 때 수시로 국정을 ‘조사’하지만, 우리처럼 20일 동안 일제히 국정을 ‘감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 의회의 행정부 감시가 우리 국회보다 미흡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경우 국정감사 제도가 시행된 지난 20년 동안 그 실효성 논란을 겪지 않고 넘어간 해가 거의 없었다. 이는 국정감사가 국회의 핵심적 기능이고 그것을 해야만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된다는 우리 사회의 믿음과 기대가 틀릴 수도 있다는 증거다.
본질적으로 국정감사는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활동 가운데 하나다. 명칭만 ‘감사’일 뿐, 실제로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형식이나 내용은 평소 국회의 대정부 정책질의와 거의 다르지 않다. 흔히 국정감사는 일반 국회활동과 차이가 많으리라 짐작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정부 부서로부터의 보고 청취와 질의 답변, 자료제출 요구, 증인의 출석 요구, 위증에 대한 처벌 등 국정감사에 적용되는 상당 부분은 국회의 통상적 안건심의나 국정조사 절차에 그대로 적용된다. 정부의 각종 자료가 일거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도 국정감사이기 때문에 특별히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실한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와 무관하게 언제든지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여 입수하고 있고, 부지런한 언론 역시 얼마든지 이를 보도하고 있다. 굳이 차별화되는 부분을 든다면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주로 현장으로 간다는 점과 주요 간부들의 선서를 듣는다는 점인데, 신선해 보이는 이 절차도 국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질의 답변이 이루어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사실 없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의 이해나 기대와는 달리, 국정감사는 의외로 평범한 성격의 활동인 것이다.
국정감사의 이 평범성이 상당수 국회의원들에게 긴장과 흥분을 일으키는지 모른다. 그들에겐 국정감사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을 유리한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국정감사를 어떻게 해서든‘흥행 이벤트’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국정감사장에서 흔히 마주치는 모욕적인 고함, ‘아니면 말고’ 식 폭로, 감사 대상을 아예 구경꾼으로 만드는 의원들끼리의 거친 공방은 바로 그런 정치적 욕망의 결과로 나타난다. 20일 동안의 이런 국정감사 ‘행사’가 오히려 행정부 견제를 약화시킬 것은 뻔한 일이다. 진정한 의회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행정부 견제는 행사가 아닌 일상적인 국정‘감시’가 되어야 한다.
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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