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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04 18:48 수정 : 2007.11.04 18:48

홍은택/NHN 이사

세상읽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으로 알려진 국보 무구정광 다라니경(무구정경)의 제작연대가 논란에 휩싸였다. 그동안 가장 오래됐다고 본 근거는 8세기 중반 석가탑을 건립할 때 집어넣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는데 고려시대에 석가탑을 두 차례 보수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 무구정경을 집어넣었다는 기록(묵서지편)이 나온 것이다.

학계의 주장을 종합하면 여전히 통일신라시대설이 대세지만 고려시대에 제작됐을 가능성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다. 경전 훼손 우려 때문에 탄소연대측정법도 쓸 수 없다고 한다. 범죄현장수사대(시에스아이)를 투입해도 당장 풀기 어려운 의문이다.

목판인쇄술 자체는 중국에서 먼저 나왔다. 무구정경의 가치는 인쇄술의 발명이 아니라 인쇄된 결과의 오래됨에 있다. 시간의 마모를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문화유물의 희귀성과 정신적 가치 외에도 그것을 보존하려고 한 사람들의 의지가 또다른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뭔가를 공동의 기억으로 고이 간수해 후세와 공유하고 싶은 의지였을 테다.

그러나 이 목판본을 금동제 사리외함에 담아 석가탑에 넣은 승려는 세계 최고의 목판본을 보존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경전에 담긴 불심으로 석가탑을 지키고 석가탑을 통해 불심을 전파하고 싶은 뜻이었을 것이다. 제작연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2007년의 논쟁을 극락에서 지켜보면서 달을 봐야지 왜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만 보느냐고 혀를 찰 수도 있겠다. 어떤 연유에서든 무구정경은 석가탑이라는 타임캡슐에 담겨 공동의 기억으로 살아남았다.

천 년 뒤 공동의 기억으로 살아남을 지금 시대의 무구정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알 수가 없다. 천 년 뒤 어떤 기준으로 우리를 평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분명한 것은 그때의 역사가들은 석가탑 안을 뒤지거나 왕릉을 파헤치는 대신 검색을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는 우리 시대를 읽는 콘텍스트가 될 것이다.

네이버와 같은 검색 엔진은 어떤 검색어가 입력됐을 때 많은 사람이 원하는 자료를 찾아줄 확률을 높여야 한다. 이 확률게임에서 이기려면 공통 관심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반대로 검색창에 자주 입력되는 검색어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도 알게 된다. 검색 결과와 검색어가 상호작용하면서 관심의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진다. 관심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검색 결과도 바뀐다.

검색 회사들은 검색어 순위를 집계한다. 일간, 주간, 월간, 연간 검색어 1위. 이것은 그동안 역사의 기록, 아니 아예 기록의 기회에서 배제됐던 일반인들이 집합적으로 족적을 남기는 자격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래 간직하고 싶은 공동의 기억이 될지 의문이다. 지난해 이용자들이 네이버의 검색창에 가장 많이 입력한 검색어는 스위스전 재경기였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스위스에 분패하자 재경기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물론 재경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은 온라인 게임인 카트라이더. 표피적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태곳적부터 검색 서비스가 있었으면 무구정경은 검색어 1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신라시대라고 하면 천관녀, 조선시대라면 황진이가 검색어 순위의 상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장강의 앞물이 뒷물에 밀려가듯 관심은 다른 관심에 밀려 무시간성의 바다로 흘러간다. 어떤 관심을 공동의 기억으로 붙잡을 것인가. 데이터베이스라는 콘텍스트에서 어떤 텍스트를 뽑아낼 것인가. 검색에도 논리적 연산법(알고리즘)이 있듯이 역사가도 시대를 검색하는 알고리즘을 짜야 한다. 이 시대의 무구정경이 검색 결과 첫줄에 나오게 하는 그런 알고리즘을 짜는 누군가가 나올 것이다.

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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