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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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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맘몬은 성경에 나오는 재물신이다. 2000여년 전의 이스라엘에서도 이 돈의 신이 가진 위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예수는 성전마저도 맘몬에 접수된 현실을 개탄하며 돈의 인간지배를 여러 차례 경고했다. 맘몬을 섬기는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이 상품화되며 모든 가치가 돈으로 평가된다. 학자, 예술가, 언론인, 정치가, 법조인, 교육자, 의사, 그리고 심지어는 성직자 등 누가 무슨 일을 하든 큰 상관은 없다. 그저 돈을 많이 모으면 존경받고 그렇지 못하면 무시된다. 혹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지 아니한가?언제부턴가 새해 인사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전통 인사말을 구체화한 거란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복이란 돈 많이 있음을 의미하게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행복의 조건 등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돈이 1순위로 꼽히는 경우가 단연 우세하다. 건강, 우정, 가족애, 자아실현, 문화생활, 직장 만족도, 창의력 발휘 등은 모두 돈 뒤로 밀리곤 한다. 민주주의의 요람이었던 대학가는 요즘 ‘부자학’ 열기로 뜨겁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언제나 재테크 관련 서적들로 가득 찬다. 편하고 화려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성상품으로 내놓는 젊은이들도 늘어간다. 값만 잘 쳐준다면 영혼까지 팔 태세다. 돈 벌기에 매몰된 현상은 단지 개인의 영역에서만 관찰되는 게 아니다. 이 땅의 많은 대학, 교회, 사찰, 언론사, 지방정부 등이 소위 최고경영자(CEO)형 지도자를 앞세워 돈 모으기 경쟁에 나섰다. 그야말로 ‘시장사회’다.
모두가 이 경쟁에 혈안이 돼 있으니 맘몬의 위세는 날이 갈수록 높아간다. 그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그리고 적법과 불법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거나 자유자재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예컨대 정몽구 회장의 횡령이나 김승연 회장의 폭행은 용서받게 해주나 이름없는 가난한 실직자의 항변과 몸부림은 엄중한 법 처벌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 원칙을 철저히 수호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맘몬주의의 기본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법원만이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의 고백처럼 한국의 국가는 이미 그 권력을 시장에 뺏겼는지도 모른다. ‘삼성공화국’이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나온 이름이 아니겠는가.
시장에서 국가권력의 협소화는 자본권력의 비대화를 의미하며 그것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정체 혹은 후퇴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가난한 개인이나 집단 혹은 계층들을 국가가 보호할 여지는 줄어들고, 따라서 그들은 점차 주인의 자리에서 밀려나 노예의 자리로 내려앉는다. 이는 사실 맘몬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신인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제대로 숭배하지 못했거나 안 한 탓에 그렇게 된 시장의 약자들을 감히 일개 국가가 나서서 챙겨준다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다. 신앙이 부족한 자는 고통받아 마땅하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맘몬의 대한민국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본다면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도록 할 수 있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식별 기준은 간단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사회양극화 문제 등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을 보고 맘몬 신앙의 현대판인 신자유주의에 누가 더 철저한지를 가려내면 된다. 그러나 맘몬의 지배를 부당한 것으로 여긴다면 ‘감히’ 맘몬에 당당히 맞서 시장의 조정과 제어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후보를 밀어줘야 한다. 우리 사회에 대한 맘몬의 향후 지배력 정도는 상당 부분 우리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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