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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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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여섯 사람 전체가 사의 표명을 하여 후속 인선이 진행 중이다.수석비서관 중 이종찬 민정수석을 제외한 다섯 사람은 경제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곽승준 국정기획수석(미국 밴더빌트대 대학원), 박재완 정무수석(서울대), 김병국 외교안보수석(미국 하버드대), 김중수 경제수석(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미국 코넬대 대학원)이 그러하다.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최근거리에서 보좌한다. 수석비서관들은 직접 관련된 분야뿐 아니라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다른 분야에도 개입한다. 이들 중 경제학 전공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국정 전체가 경제학의 관점에서 수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경제학이 있지만 실제로 다양한 경제학을 접하는 것은 어렵다. 미국의 어떤 경제학자의 추산에 의하면 미국의 1만5천 경제학자 중 90~95%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다. 작년에 김수행 교수가 퇴임함으로써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33명 전원이 신고전파 경제학자로 채워지게 되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한국 경제학계도 신고전파 경제학에 치우쳐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개인주의와 수학을 방법론으로 하고 있으며 ‘단순한 가정’과 ‘어려운 추론 과정’, ‘놀라운 결론’을 미덕으로 한다.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기에 곤란한 사항들이나 이런 기준들에 비추어 저열한 논리들은 아무리 현실적으로 중요하고 타당하다고 해도 이 이론체계에서 배제되고 만다. 그 결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부의장인 앨런 블라인더의 말처럼 신고전파 경제학은 너무나 많은 이데올로기로 채워져 있고 이론이 종종 사실을 덮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자유무역의 폐해와 작은 정부의 폐해처럼 ‘초중딩도 아는 사실’에 대한 설명조차 이 체계에서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신고전파 경제학이 매우 중요한 결함이 있다고 해도 절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이를 전공했다는 것은 신고전파 경제이론을 대체할 만큼 지적으로 흡인력이 있고 체계적인 경제이론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누가 경제수석이 되어도 신고전파 경제이론이라는 배경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분이 경제현실에 대해 의식적으로 눈과 귀를 더 멀리 열고 자신의 견해에 대해 더 성찰적으로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제학 내부에는 사회적·정치적 행동을 경제행동의 모델 위에서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경제이론을 확장하여 사회적·정치적 세계까지 포괄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리 베커가 한 노벨경제학상 수상 연설의 제목은 ‘삶을 바라보는 경제학의 방식’인데 여기서 그는 “개인들은, 그들이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충실하든, 악의적이든, 자학적이든, 효용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효용을 극대화한다”가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로 변환되고 이는 다시 “효용을 극대화하라”라는 규범으로 쉽게 변환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보면 어느 날부터 무엇인가를 극대화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을 겪는다. 극대화라는 기준에서 측정이 힘든 것은 삶에서 빠져나가고 측정하기 쉬운 것만 남는다. 옆집 아이는 서울대를 갔는데 우리 아이는 고려대를 갔다는 사실은 유쾌해야 할지 불쾌해야 할지 판단하기 쉬운 사실인가? 옆집 아이는 소리 감수성이 뛰어난데 우리 아이는 공간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유쾌해야 할지 불쾌해야 할지 판단하기 쉬운 사실인가?
경제수석을 제외한 다른 수석은 경제학 배경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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