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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3 20:17 수정 : 2008.07.03 20:17

김형경 소설가

세상읽기

비혼, 완경 등의 언어를 제안한 페미니스트들이 불륜이라는 단어에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불륜이라는 낱말에는 이미 비판적, 혹은 비난조의 태도가 내재되어 있어 그 행위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그런 행위에 대해 ‘낯선 곳으로 가다’라는 의미의 가치 중립적인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 무렵 사석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선생님을 뵈었을 때 프랑스에서는 불륜에 해당하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여쭈어보고 싶었다. 그래, 이렇게 허두를 꺼냈다. “선생님,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이요 ….”

고작 그 말씀만 드렸을 뿐인데 선생님이 문득 높은 목소리로 말허리를 잘랐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은 말이야!” 그분은 격앙된 말투로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의 타협할 줄 모르는 일방성, 앞뒤 없는 맹목성, 과도한 공격성 등을 한동안 질타하셨다. 그럴 때 나는 가만히 듣기만 한다. 그분과는 견해가 다르지만 그분의 주장도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수백년 동안 당연히 누려오던 권력을 조금씩 내놓으려니 그 불편과 분노가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여성의 처지에서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는 두 입장 사이의 골을 들여다보며 긴 말씀을 다 들은 뒤 질문을 마저 했다. 그분은 거듭 생각해 보시더니 불어에는 불륜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개념이 없으니 언어도 없는 모양이다.

불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양성간, 세대간에 가로놓인 심리적 정서적 계곡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입장과 입장 사이의 계곡이 깊다. 짧은 시간에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세대마다 다른 콤플렉스를 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레드 콤플렉스나 가난을 경험한 세대의 끝없는 탐욕에 대해서는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들에게 ‘빨갱이’는 무의식적 현재이고, 북한으로 지원되는 식량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심리적 진실이다. 그들에게 수돗물로 굶주린 배를 채운 경험은 무의식의 핵심이고, 아파트 분양 사무실 앞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는 마음은 절박한 진실인 것이다.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그들의 공포심이나 결핍감에 대해서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참혹한 전쟁이나 치명적 가난으로부터 살짝 비켜선 우리 세대의 내면에는 국산품 애용, 간첩 신고는 113, 쥐를 잡자 등의 표어가 걸려 있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일관되게 안정과 번영과 민주를 외친다. 다른 어떤 세대보다 열심히 피부에 와닿는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쓴다. 한편으로는 소비의 시대, 국제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모토롤라 전화기가 예뻐 보여도 애니콜을 집어든다. 그것은 옳거나 그르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마다 다른 콤플렉스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콤플렉스를 추동력으로 살아가는, 세대마다 다른 특성일 것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다음 세대 젊은이들을 보면 입에 웃음이 물린다. 구호가 적힌 카드와 에비앙 물병을 함께 들고, 크리스찬 디오르 선글라스와 프라다 핸드백을 착용한 모습에서는 윗세대들이 가진 구차한 집단 콤플렉스가 보이지 않는다. 명분이나 당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몸에 와닿는 실제적 이익을 위해 힘을 모으는 모습도 보기에 가볍다. 세대간 갈등이란 원래 존재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 사실을 인정한 채, 그 위에서 갈등을 조절하는 쪽으로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름을 손가락질하며 갈등을 심화시키기보다는.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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