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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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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른바 사회적 손실비용이라며 내놓는 통계수치를 대할 때마다 용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2002년 황사가 심했을 때 어떤 연구소는 “황사 피해액이 연간 5조5천억원, 곧 국민 1인당 11만7천원씩 피해를 입었다”고 정밀하게 계산해 냈다. 그 다음해 태풍 매미가 다녀가며 끼친 피해액은 4조원 가량이었고, 2006년엔 음주에서 비롯된 사회적 손실비용이 연간 15조원이라는 통계도 있었다.파업에 따른 손실로 가면 액수는 더 세밀해진다. 2006년 여름 “파업 돌입 17일째를 맞은 현대차 노조의 부분파업은 물리적인 생산차질 규모만 7만4611대, 총 1조306억원에 달해 1조원을 돌파했다.”(연합뉴스) 그리고 지난달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총 72억5700만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혔다.
아, 물론 숫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액도 있다. 지난봄 어느 신문에 “삼성그룹이 특검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일본과 대만 기업은 엘시디와 반도체 등의 삼성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는 시기가 중요한데 삼성은 때를 놓치고” 있으므로, “삼성 특검이 하루빨리 마무리돼 삼성그룹이 우리나라 간판기업으로서 역할을 다할 때 경제 및 산업 활성화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 경우는 피해액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국가적 재난이 되겠다.
한데 이런 계산들은 사람을 주눅 들게도 하지만, 가끔 뒤집어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황사도 없고 태풍도 없고 또 파업도 없는 오늘은 과연 얼마짜리일까? 매우 무덥기는 하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 더위를 식혀주는 이 여름날 오후의 가격은 얼마라는 것일까? 나아가 툭하면 경영환경이 어렵다고 비명을 지르는 ‘전경련’이나 ‘경총’과 같은 경영인 단체가 한번이라도 황사 없는 하늘에, 때맞춰 내려주는 비에, 혹은 파업하지 않는 화물연대에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평상스러운 일상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심드렁해하다가, 비바람이라도 세찰 때면 꼬박꼬박 손해액수를 작성해서 우는 소리를 해대는 이 사람들의 계산법은 참 특수하다. 언젠가는 ‘시간경영’이라며 시간을 이리저리 쪼개더니, 또 언제부터는 ‘인간경영’이라며 사람을 숫자 속에 집어넣어 더하고 빼기를 하다가, 또 최근에는 환경을 대상으로 삼아 숫자놀음이 한창이다. 이렇게 시간도 인간도, 환경조차 숫자로 딱딱 맞춰 나가다 보면 금방 자기 부모나 자식도, 아니 자기 자신조차 숫자로 계산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테다.(그대는 얼마짜리인가?)
아! 드디어 기다리던 계산서가 나왔다. 촛불피해 계산서다. 버전은 둘이다. 하나는 김동수 기획재정부 차관의 “촛불시위가 두 달 넘게 장기화하면서 경제사회적 손실이 5천억원 이상 이를 것”이라는 계산서다. 또 하나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이것저것 합쳐서 촛불시위로 말미암은 “총 국가적 손실이 1조9228억원에 달한다”는 보고서다. 매양 이런 계산서를 볼 때마다 솟는 감회지만, ‘다들 계산하시느라 애썼다.’ 대략 2조원쯤 된다고 하면 될 걸 끝자리까지 맞춰 계산해 낸 그 정확성에 대한 열의가 눈물겹다. 내처 백 단위 십 단위까지 계산해서, 1조9228억1234만5670원이라고 딱 떨어지게 매조졌더라면 더욱 삼엄하고 엄숙했을 뻔했다.
숫자놀음의 허망함을 두고 <금강경>에는 “동쪽 하늘의 텅빈 공간을 계산할 수 있겠더냐”고 비유하는 대목이 있다. 둘을 겹치면 요즘 사회적 손실비용이라며 계산하는 짓들이 꼭 숫자의 환영에 빠져 어린애들 딱지놀이 하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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