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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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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제가 말하려는 것은 아버지의 교육 방법과 그것이 저에게 끼친 영향입니다. 물을 달라고 조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과 그로 인해 밖으로 쫓겨나야 했던 끔찍한 경험을 제 성격상 제대로 연결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도 저는 거인 같은 남자, 최종 심판자인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저를 문 밖으로 데려갈 수 있고, 저는 그처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고통스러운 생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한 대목이다. 소책자 한 권 분량의 이 편지는 정신분석학자들이 분석 자료로 자주 사용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서른다섯 살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이 정도의 자기주장을 하게 되었으면서도, 편지를 아버지에게 직접 건네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의 또 다른 복종자였던 어머니는 편지를 전해주지 않아 다시 한번 그를 좌절시킨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제안하면서, 아이가 부모 사이의 성적 긴장감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간다고 주장했다. 라캉은 생물학적 아버지의 존재가 아니라 상징적 아버지의 법, 질서, 언어가 한 인간이 성인의 문턱을 넘는 경계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의 삼각형이 절대적으로 확장된 극한에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내담자의 80%는 오이디푸스 문제가 요인이 된 증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베레나 카스트 같은 현대 정신분석가는 아예 ‘어머니 콤플렉스’ ‘아버지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특히 개인이 경험하는 아버지 콤플렉스가 가부장제 시스템과도 궤적을 함께한다고 설명한다.
한 개인의 정신 발달에 아버지 존재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때의 아버지는 실제적이고 생물학적인 아버지뿐 아니라 아동이 내면에 만들어 가진 ‘아버지에 대한 환상’도 포함된다. 또한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가부장제가 만들어 유포하는 ‘거대한 아버지 이미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힘과 권력,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아버지를 잘 넘어서서, 아버지와 대등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발달의 핵심이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누구나 얼마간 아버지 콤플렉스를 지니는 것이 보통이다.
‘아버지 콤플렉스’의 한쪽 극단에는 지배하고 통제하는 거대한 아버지 이미지 앞에서 위축되고 소심해진 아들이 있다. 그들은 권위에 복종하고 권력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생의 가치를 삼는다. 아버지 콤플렉스의 다른 극단에는 거대한 아버지 이미지를 내면화시킨 아들이 있다. 그들은 사회에 통용되는 법과 질서를 무시한 채 자기만의 법칙에 따라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진다. 과장된 자기를 가진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타인과 사회에 잠재적 위험 인물이 된다.
억압적 가부장제는 남녀 모두에게 좋지 않지만 특히 남성의 인격 발달에 치명적이다. 힘과 권력 앞에 위축된 아들과, 자신이 곧 법인 듯 행동하는 확장된 아들은 동일한 심리의 서로 다른 측면일 뿐이다. 한 개인의 성격 속에 두 요소가 모두 존재한다고 보는 게 옳다. 개인의 콤플렉스는 사회적 제도와 정치적 영역까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침투해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가부장제를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감시, 통제, 억압하는 ‘거대한 아버지’ 환상을 생산해내며 바른 세계관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그 제도를.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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