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13 18:36
수정 : 2018.02.13 19:17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수십년은 신자유주의의 시대였다.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시장은 효율적인 자원배분 기구’라는 경제학적 지식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나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켜 ‘나쁜 정부’ 대신 ‘좋은 시장’을 강요하던 그 물결에 함께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201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 교수에 따르면, 경제학은 시장의 기능과 작동방식에 우선적 관심을 갖지만, 시장을 정당화하는 학문은 아니다. 사유재산을 옹호하거나 사적 이익을 섬기는 학문도 아니다. 시장은 희소한 자원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이지만, 수많은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하고 높은 효율을 구가하기에 희소성을 관리하는 데 가장 매력적이다.
그런데 시장에는 성공적인 거래에 필요불가결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거래자들의 행위가 제3자에게 피해를 발생시키는 외부성과 같은 현상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그로 인해, 시장을 옹호하거나 그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장실패 현상을 확인하고 그 실패를 교정할 이론적 토대나 정책적 처방을 제공하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임무로 제시된다.
티롤에 따르면, 경제학은 사회의 공동선 달성에 기여하려는 학문이다. 공동선(common good)이란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사회를 향한 집단적 열망 혹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공동 이익을 의미하는데, 이는 다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회에 살고 싶은가’의 과제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어떻게 전체의 이익에도 유념하도록 할 것인가’의 과제로 나뉜다.
이 중 첫번째는 사회적 합의이자 정치적 선택의 과제이고 경제학의 몫은 두번째 과제라는 게 티롤의 입장이다. 달성하려는 공동선의 구체적 목표가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면, 경제학은 이를 달성할 구체적인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즉, 공동 이익에 부합하게끔 유도하거나 공동 이익을 저해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사용해 개인의 목표가 집단의 목표와 나란히 정렬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언급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설정된 공동선의 목표에 맞는 방향으로 각자의 선택을 독려하도록 경기 규칙을 세우고 이를 엄정히 집행함으로써 행위자들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정은 각자의 선택에 맡기되, 그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다른 의견도 많을 것이다. 공공선을 위한 제도 설계에는 인센티브에 더해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감정이 동반되어야 한다거나, 정부는 사회라는 정원이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게 잡초를 솎아내고 어떤 식물들로 정원을 가꿀지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정원사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시장실패보다는 시장원리의 확산에 따른 공동체의 붕괴나 시민정신의 고갈 현상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티롤의 인식은 시장과 기업이 ‘목적’으로 격상되고 사회와 사람이 ‘수단’으로 전락한 오늘날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논의들에 힘입어, 지난 2천년 이래 전승되었던 인류의 오랜 통념, 곧 시장과 경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시장과 경제의 진정한 목적은 더 많은 이윤이 아니라 사회의 유지와 발전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행복에 있다는 그 통념이, 지난 200여년의 공백기를 뛰어넘어 다시 우리 모두의 상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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