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3.01 17:30 수정 : 2018.03.01 18:57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배후 세력에 의한 공작이다.”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냉전 한국에서 사라진 적이 없던 말, 발화되자마자 효력을 갖는 말. “배후 세력의 준동”을 의심하는 저 발화자의 배후는 왜 물을 수 없는가? 배후를 추궁할 뿐 추궁당하지 않는 그 자리는 바로 모든 정보의 독점, 앎의 절대성을 선포할 수 있는 특권을 통해 만들어진다. 냉전 한국에서 “배후 세력”을 추궁하는 발화가 표적 집단의 생사여탈권을 손아귀에 쥐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신적 권력이 정당화되고 세습되어왔기 때문이다. “배후 세력의 공작”을 추궁하는 발화는, 어떤 실제적 조치가 없이도, 발화만으로도 모든 존재의 생사여탈권을 손아귀에 쥐고, 목소리를 빼앗고, 유서 조각도 불살라버린 냉전 최대 적폐, 신적 권력이 현현하는 대표적 방식이다.

미투 운동의 확산에 대해 음모론과 배후 세력 공작설이 들끓고 있다. 무엇보다 ‘진보진영’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음모론과 배후 세력 공작설은 여러모로 분석할 징후다. 극우 집단이 활용해온 ‘배후 세력 공작’ 발화는 행위 자체만으로 여러 몸을 특정 위치에 강제로 할당한다. 발화 주체는 모든 정보를 다 아는 절대적 앎을 근거로 신의 자리에 등극하며 동시에 사회는 이 신의 보호에 맡겨져야 할 성지가 된다. 반면 발화 표적 집단은 성지의 신성을 침해하는 불순물, 오염물로 정화 대상이 된다. 표적 집단이 불순물, 오염물이 되는 건, 그들이 바로 배후 세력 공작에 의해 순수성을 상실한 혹은 상실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발화 프레임에서 표적 집단은 항상 ‘외부 세력’에 의해 오염되거나, 침투 가능한 취약성을 지닌 존재로 할당된다. 이런 취약성의 함의는 거의 항상 여성 신체의 상징적·실제적 의미로 확대되었다.

근대 역사에서 취약한 여성의 신체는 사회와 정치에 부적절한 것으로 할당되었다. 팜파탈 표상은 젠더 차별에 입각한 시민 주체 할당의 산물이다.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급진적이고 ‘해방된’ 여성을 사회를 무너트리고 오염시키는 ‘홍수’나 ‘범람하는 불순물’로 상상하는 남성 판타지가 나치즘의 흥미로운 특성이라고 규명했다. 나치 전위 조직 남성들은 이런 범람하는 오염물로부터 아리안 남성의 순수한 몸과 영토를 지키는 것을 소명으로 여겼다. 종북과 자유 진영의 적대적 할당은 오염된 여성 신체와 순수한 남성 신체/영토의 내적 대립으로 반복된다.

미투 운동의 배후를 염려하며 오남용을 주의하라는 ‘진보집단’의 발화가 ‘예언’의 이름으로 선언되고 유포된 것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극우 집단이 배후 세력을 추궁하며 주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한 것은 ‘모든 정보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자기 앎의 절대화에 의해 가능했다. 정보 통제 역시 이런 절대화의 산물이다. 이런 정보 통제를 염려한다는 명분을 띠고 있으나 ‘모든 흐름을 아는 자’가 미투의 배후 세력이 등장할 것이라며 경고하는 ‘예언’은 말 그대로 발화 주체를 절대적 앎을 지닌 신의 자리로 등극시킨다. 그리고 신적 권력을 통해 추궁당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빼앗고, 말들의 조각도 불태워버리고 있다. 배후 세력을 추궁하는 발화가 어떤 후속 조치가 없이도 이미 생사여탈권을 실행하듯이, 예언은 실현됨으로써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발화의 자리, 즉 예언자의 신적 자리를 통해 힘을 갖는다.

근대와 파시즘의 내적 전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진보의 이름으로 황야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아주의의 위험성을 비판해왔다. 좌파 이론의 내적 성찰과 전화 과정 또한 진보를 미래에 대한 예언과 예정설로 환원시키는 종말론과 메시아주의와 결별하는 일이었다. 진보를 위협하는 것은 배후 세력이 아니라, 바로 성지 수호의 메시아주의와 신성화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트위터 실시간글

bjchina123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EuiQKIM RT @qfarmm : [포토]42년 만에 최악 가뭄···위성사진으로 본 소양강댐 http://t.co/BMpS2UjVoq http://t.co/r4OxEINQ1z

LAST_Korea RT @cjkcsek : [사설] ‘어린이 밥그릇’까지 종북 딱지 붙이나 홍준표의 유치한 종북몰이는 자신의 ‘저질 정치인’ 면모만 부각시키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http://t.co/XxOwP51oyK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할머니들도 ‘기껏 1번 찍어줬더니 아그들 밥값 가지고…’ 성토”http://t.co/ukHxPKTNnm[오마이] 홍준표, '해외골프' 뒤 첫 출근길에 비난 펼침막http://t.co/xn…

HillhumIna RT @jmseek21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 http://t.co/whlFjwWSl9

CbalsZotto 보궐선거용 거짓 립서비스~ “ @shreka3880 : ‘세월호 피해자 가족’ 챙기기 나선 새누리당 http://t.co/tfkk6gGEci 세월호 진상조사나 방해나 하자말라”

cess0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할까요.http://t.co/RyPp5DzeRr[미디어오늘] 유가족들 우려가 현실이 됐다http://t.co/coAAtDbtRQ

sookpoet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헌재 ‘김영란법’ 헌법소원 심리키로http://t.co/UMzV2bA4hY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