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02 20:43
수정 : 2018.03.02 21:01
김유익
다문화 ‘생활’ 통역
얼마 전, 며칠 신세를 졌던 광저우 근교 한 농장에서 습관대로 홀로 차를 내려 마셨다. 아침부터 농장일로 바쁜, 친구의 어머니는 차를 사양하면서 혀를 찼다. 광둥 사람들이 어지간히 차를 좋아하는데, 아침부터 ‘차러우’에 죽치고 앉아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노인들은 죄다 남자들이란다. 어쩌다 한국 남자인 나도 그러고 있느냐는 힐난조였다. 홍콩을 비롯한 광둥의 노인들이 공원에서 태극권을 연마하고 들르는 곳이 차러우, 즉 딤섬집이다. 태극권 수련자는 남녀 구분이 없는데, 왜 아침 차러우엔 할아버지들뿐일까? 할머니들은 아침식사 준비하러 부엌으로 총총히 가신 것일까?
한국에서 커피가 삶의 큰 낙이었고, 그 습관을 중국에서도 삼년간 지켜왔다. 그런데 ‘차’로 갈아탄 지 삼개월째다. 이젠 매일 아침 차로 공복을 달랜다. 중국 문화를 다시 깊이 이해해보고 싶어져 그들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차를 제대로 공부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중국인이라면 남녀노소 유전자에 새겨진 듯 애호하는 그 차 수업에 왜 여성 수강생들만 있느냐가 늘 궁금했다. 어차피 저녁 시간이었고, 참여한 여성 중 전업주부는 한명도 없었는데도. 그러고 보니, 전통찻집에서 멋진 의상을 입고, 단정하게 차를 내려주던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집에 놀러 가면 차를 대접하는 이들은 또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중국 친구들에게 집요하게 물었더니, 결국 솔직히 대답해준다. 마치 한국의 ‘아재’들이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맛있다는 것처럼, 친구 간의 차담 교류가 아닌 서비스업으로서 차 따르기는 사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그러다 보니 형식을 갖춘 차 수업은 알게 모르게 남자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아리송한 것 중 하나가 남녀평등이다. 십수년 전 베이징에서 일할 때, 중국인 부하 직원이 퇴근 후 집에 가서 아이를 봐야 하니 차라리 집에서 야근을 하겠다기에, 부인도 일하냐고 물었다. 전업주부란다. 하루 종일 부인이 아이를 돌봤으니, 저녁만이라도 자기 순번이 돼야 한다는 설명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역시 중국은 아시아의 여권 선진국. 실제 과도한 업무로 여성이 적기로 소문난 업계였는데도, 여성이 유독 많았다. “너희 한국 남자들은 모두 마초”라며 비아냥 섞인 놀림에 부정도 못했다.
십여년 만에 중국에 돌아와 현지인들과 밀착해 생활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특히 도시와 달리 농촌의 가부장제, 그중에서도 북쪽 사람들의 남존여비는 타임머신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가는 수준이었다. 얼마 전, 한 중국인 페미니스트의 인터뷰를 읽고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마오쩌둥은 중국 역사상 여권 신장에 최대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하루아침에 전족을 없애고, 여성들이 가정 밖 일터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 의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의 부산물로 얻어진 결과일 뿐입니다.” 그런데 최근 공산주의를 대체한 전통가치를 사회통합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면서, 노령화 등으로 심화되는 사회복지 문제를 개별 가정에 떠맡기고, 특히 여성에게 더 많은 돌봄노동의 책임을 지우는 정책 방향에 따라 여성의 사회 참여가 퇴조하고 있단다.
중국은 실제적인 측면에서 가정과 직장에서 상당한 남녀평등을 이뤘지만, 의식 면에서는 한국보다 낙후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과 정치적 참여가 제약된 상황에서, 생활진보와 의식진보는 괴리를 보인다. 실질이 중요하지만, 의식이 뒤떨어지면 제도와 안정된 규범이 형성될 수 없고, 상황에 따라 쉽게 퇴보를 경험하게 된다. 두 사회가 서로 경험에서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생활진보, 중국은 더 많은 의식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후지이 다케시의 ‘세상 읽기’를 마치고 김유익씨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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