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05 18:21
수정 : 2018.03.05 19:05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을 듣는다. 삼풍백화점, 용산 참사, 태안 해병대 캠프 등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들이 나와 이야기하는 이 방송의 진행자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 유경근씨다. 말하자면 19년 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로 일곱 살 쌍둥이 딸 둘을 잃은 아버지와 4년 전 세월호 참사로 열여덟 살 쌍둥이 딸 하나를 잃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 제작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 끝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씨랜드 화재 사고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 시신은 이미 국과수로 옮겨진 뒤였다. 정신없이 달려간 국과수에서 아버지는 시신들이 많이 상했고 뼈도 조각이 나 있어 신원확인에 두 달은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재의 원인을 밝히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했다. 그러나 3일 후 경찰은 화재 원인이 모기향이라고 발표했고, 곧이어 국과수에서 신원확인이 끝났으니 시신을 인수해 가라고 했다.
화성군, 화성경찰서, 국과수를 쫓아다니며 항의하던 유족들은 38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아이의 시신을 매장하고 싶다는 부모도 있었는데, 제가 설득했습니다. 우리, 국과수 말 믿을 수 없잖아요. 하늘에서만큼은 우리 아이들이 자기 팔다리 찾아가게 합시다. 열아홉 명 아이들을 화장해 한곳에 뿌렸습니다. 화성에서 가장 먼 곳, 주문진 앞바다 4㎞ 지점에요.”
참사의 어마어마한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방송을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그것은 유가족들의 대화가 주는 이상한 위로 때문이다. 38일 만에 딸들의 장례를 치른 아버지가 한숨을 뱉듯이 “포기한 겁니다”라고 말하자, 진행자인 또 다른 아버지가 힘주어 말한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때 누군가 와 주었다면 좀 더 버티지 않았겠습니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게스트가 문득 진행자에게 “분하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면, 진행자가 답한다. “분하죠. 어떤 때는 정말, 누구 하나 죽이고 같이 따라 죽고 싶죠.” 이것은 꼭, 둘이서 하는 혼잣말 같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망월동에 한열이를 묻어놓고 돌아와, 1년 동안 현관에 불을 못 껐어요”라고 말하자, 진행자인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말을 잇는다. “저는 아직도 아파트 비밀번호를 못 바꿨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말하길, “세상에서 제일 귀한 걸 뺏겼는데, 그보다 중한 게 뭣이 있다고 비밀번호를 바꾸겠어요. 나는 대문도 못 닫았습니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아이가 있으니.” 30년 전 아들을 잃은 팔순 여인의 메마른 목소리가 4년 전 딸을 잃은 중년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감싼다. “그쪽은 나보다 젊어 당했으니 더 오래 힘들겠구먼.” 이것은 그녀가 30년 전 젊은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바로 저 스튜디오 안에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악의적 왜곡이나 게으른 편견 같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두 사람 사이의 공간. 당신의 긴 이야기를 함부로 요약하지 않을 것이며, 맥락을 삭제한 채 인용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공간. 그 절대적 안전함 위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떨림, 머뭇거림, 한숨, 침묵, ‘말할 수 없음’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이.
진실은 잘 정리된 핵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의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배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깨달으며 4월16일에 닿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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