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19 17:55
수정 : 2018.03.19 19:03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민화협 정책위원장
작년 한 해 한반도 상공에 짙게 드리웠던 전운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말끔히 가셨다.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남·북·미 3국 외교·안보 실무자들은 그 준비에 바쁘다. 중·러도 한반도 정세 변화를 환영하면서 다가올 6자회담을 준비하는 것 같다. 그동안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딴지 걸면서 대북압박 강화를 선도하던 아베 총리마저 북-일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좀 다르다. 어느 야당 대표는 “평화 사기극에 놀아나면 안보는 누란의 위기”라며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를 자행했다”고 겁박했다. ‘8번 약속 깬 북한의 9번째 약속’을 믿을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한 언론도 있다. ‘사기극’ ‘8번 약속 깬 북한’ 같은 표현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개선된 남북관계가 사기극이고 비핵화는 지키지 않을 약속이라고 예단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 저변엔 ‘이 좋은 기회를 문재인에게 뺏기다니’라는 시샘이 깔려 있는 것 같지만, 혹시라도 북핵문제의 역사와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어 그런가 싶어 몇 가지 정리해본다.
첫째,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 북핵문제에 관한 한 심판자는 우리가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국제 핵 비확산 책임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정보도 많다. 그런 미국의 트럼프가 비핵화를 논의하자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받아들였고, 곧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런데도 ‘평화 사기극’이니 ‘이번에도 또 속을 거냐’고 말하는 것은 결국 보수진영이 하늘처럼 여기는 동맹국 미국의 대통령에게 딴지 거는 셈이다. 북한을 잘 아는 중·러도 이번 연쇄 정상회담을 지지하고 나섰다. 중·러가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 보수진영의 요구가 워낙 드세니까 정부도 비핵화를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로 삼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핵문제는 그 역사와 구조상 정상회담에서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긴 시간 협조하면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비핵화는 궁극적으로 북-미 수교 및 평화협정과 병행해 진행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에 비핵화를 책임지라고 하는 건 현 정부를 무능한 정부로 낙인찍으려 꼬투리 잡는 ‘꼼수’로 보인다.
셋째, 북핵문제와 인권문제의 결합. 보수진영의 성향을 보면 장차 인권문제를 북핵 압박 수단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 보수진영에서 이미 이런 주장이 나왔기 때문에 국내 보수진영도 인권문제를 북핵과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는 안보 차원의 북핵문제와는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한다. 인권문제를 북핵문제와 섞거나 북핵 해결 수단으로 삼는다면 인권도 북핵도 해결하지 못하고, 죽도 밥도 아니게 된다.
자기들은 색깔론으로 딴지 걸고 어깃장 놓으면서 ‘내 주장을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민 기만극’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한편 문 대통령은 현 상황에 대해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조심’하는 심정이라 했다. 이제 막 시작된 남북 화해무드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번영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하겠지만, 남북 간 대화가 이어지면서 안보 위기감이 줄어든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새삼 영화 <강철비> 중 한 대사가 떠오른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을 받는다”는 말.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자, 안보를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자들이 되새겨봄직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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