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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3 18:08 수정 : 2018.04.03 19:32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 유한함을 견디지 못한 인간들은 영원히 사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종교는 한 개체가 죽음 이후에도 어떻게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제시했다. 종교가 창작물이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영원히 사는 방식은 자손을 낳아서 개체의 삶을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고대의 많은 인간들은 ‘너의 자손이 대대로 번창하리라’는 신의 계시를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다. 어떤 인간들은 이러한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자신의 개체를 낳지 못한 인간들도 영원히 사는 방법을 발명해낸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장치는 국가라는 존재였다.

서구 역사에서 최고의 연설들은 늘 유한한 인간이 영원히 사는 방법에 대한 해답이었다. 페리클레스에게 그리스 최고의 정치인이라는 찬사를 안긴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몰자들에 대한 추모 연설이었다. 그는 그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 아테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윈스턴 처칠은 ?蝸?르크 작전이 성공한 직후 조국을 위한 희생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역설했다. 우리가 잘 아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역시 남북전쟁에서의 그 수많은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전쟁과 죽음의 덧없음에 대해 허무감을 느끼고 있을 때, 링컨의 연설은 모든 죽은 자를 무덤에서 벌떡 일으켜 세워 미국인들 사이에서 영원히 살게 만들었다.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왕조는 죽은 왕들의 위패를 궁궐과 궁궐 사이 수도의 한복판에 모셔서 그들에게 영원한 삶을 주었고, 조국을 수호하거나 나라의 가치를 지킨 사람들에게는 사당을 내려 그들을 불사의 존재로 만들었다. 현대의 인간들은 더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덕분에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실로 거대한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동상을 갖게 되었고, 산 아래 곳곳의 공원에는 총검과 깃발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형상의 현충탑이 자리하고 있다.

한 개체가 자신보다 더 큰 가상의 존재를 통해 영원히 사는 것이 헛되고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유한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것이 헛되게 느껴진다면, 기억되어야 할 죽음과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죽어간 영혼들만큼이나, 국가로 인해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실 정치에서는 늘 죽은 자들이 말을 한다. 죽어서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70년 전 제주에서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있었다. 비단 그들뿐이랴. 보도연맹으로, 국민방위군으로, 부역자로 엮여 죽은 자들. 고문으로, 잘못된 재판으로, 국가의 탄압으로 죽은 자들. 삼청교육대에, 형제복지원에, 서산개척단에 끌려가 죽은 자들. 산업화 시기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죽어간 우리 아버지, 누이. 어디 그들뿐이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와 씨랜드와 세월호에서 죽은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가 베트남에서 죽인 영혼들까지. 이제 그들이 말하게 함으로써 우리와 함께 살게 하자.

‘이미 죽은 것을 어쩌겠다는 것이냐.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냥 두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죽은 자는 영원히 입을 다무는 법이지.’ 영화 속에서 어떤 자가 그런 말을 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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