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04 18:25
수정 : 2018.04.04 19:23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의사협회가 새로 뽑은 회장이 극우 성향이라고 말들이 많다. 다 합쳐도 전체 의사의 6%만 지지한 결과라 대표성이 없다는 소리도 있지만, 많은 선거에서 그렇듯 중대한 결격 사유인 것 같지는 않다. 회원의 뜻을 반영해 뽑힌 대표로 생각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그것이 회원과 대표가 모은 뜻이라는 것도 인정하자.
도덕과 전문직 윤리를 잣대로 비판할 생각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해에 반할 때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정상적 정치 행위다. 국가가 독점을 공인하는 전문직은 경제적 이익에 전문직 윤리를 더할 책임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 이익 말고는 고려하지 않겠다니 뭐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도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 정치의 불평등이다. 의사의 반발과 의견 표출(집단행동의 가능성까지 포함)이 정치 행위라 했으나,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쉽게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의사는 조직되어 있고 많은 자원을 가졌으며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크다. 정부, 공무원, 언론, 시민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요구할 기회는 다른 집단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문가 독과점이 무슨 문제냐고? 문재인 케어는 의학과 의료가 아니라 정책이고 그래서 정치다. 재정을 얼마나 더 써서 어디까지 건강보험 급여로 할지, 어떤 급여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환자와 보험이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모두가 사회적 정치가 판단할 몫이다. 전문 지식과 정보가 판단을 뒷받침해야 하지만, 최종 결정에는 보조 역할을 넘어서지 못한다. 임종에 가까운 환자를 딱 석 달 더 살리는 비싼 신약을 새로 건강보험에 포함해야 할지, 의사, 약사, 보건 전문가, 경제학자끼리 결정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까?
환자와 가족, 환자가 될 수 있는 시민, 보험료를 내는 노동자와 농민,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리라. 거창하게 시민성과 공적 책임까지 내세우지 않더라도, 당사자가 이해관계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참여가 불러올 효과는 생각보다 더 크다. 시민과 납세자의 이해에 부합하는 더 좋은 결정을 촉진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민주적 정치체가 추구하고 소망할 만한 가치다.
현실에서는 평평하지 못한 운동장이 다시 앞을 가로막는다. 시민은 흩어져 있고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며 정부와 언론에 접근하기 어렵다. 확립된 통로나 제도도 턱없이 허약하니, 늘 그렇듯 무슨 위원회에 시민 대표가 나가 공허한 의견을 보태는 것으로 끝난다. 많이 더 나가봐야 몇몇 단체가 모여 성명서를 내고 촉구하는 것을 넘기 어렵다.
또 외국 이야기냐는 책망을 예상하면서도, 상상을 넓히기 위해 의료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를 동원한다. 영국은 급여를 결정할 때 시민대표 30명으로 구성된 ‘시민평의회’의 권고를 참고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뿐인가, 브라질에는 저 유명한 ‘민중건강평의회’가 있다. 시군구, 주, 국가 수준에서 시민, 보건의료 전문가, 관리자가 참여해 구성하는 공식 조직인데, 일정 범위지만 정책과 예산을 직접 결정한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없는가? 시민의 부담을 줄이고 모두의 건강을 보호·보장하자는 본래 정책 취지를 잊지 말자. 이해당사자, 전문가, 관료의 독점을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사람 중심’ ‘시민 중심’의 문재인 케어가 가능하다. 지금이라도 그 길로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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