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10 18:20
수정 : 2018.04.10 19:03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국가의 번영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은 물론 타인의 이익에도 최선을 다함으로써 공공선이 달성될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보상체계의 존재가 중요한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장이다. 시장은 타인들에게 유용한 활동들을 보상해주는 시스템이다. 시장은 내가 좋아하는 활동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활동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시장이 공공선에 대한 유효한 보상체계임은 분명하다. 시장은 특히 사회적 유용성은 높지만 내적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크지 않은 활동들에 외적인 물질적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독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도 소비가 가능하거나 이용자들의 지급능력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타인에게 유용한 활동을 펼치고 공공선에 기여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기 어렵다. 또한 시장이 보상하는 것은 각자의 이익을 높이려는 과정에서 의도와 무관하게 부수적으로 달성되는 공공선이다. 그렇기에 공공선을 제고할 명시적인 목적 아래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활동들의 가치는 시장에서 별도로 인정받지도, 보상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최근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은 반가운 현상이다. 영국 정부는 2012년 <사회적 가치법>을 제정해 공공기관이 민간을 대상으로 위탁이나 조달을 할 때 사회적·환경적 편익을 반드시 고려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정부 및 유관기관의 공공조달, 나아가 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 약자 배려, 기업 간 상생협력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적극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적 가치란 공익에 기여하고 공공선을 달성하지만 거래 당사자들의 금전적 지급을 통해 보상받지 못하는 활동들의 성과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활동이나 정부의 자원 배분 과정에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그동안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계약에 따라 부여되는 보상과는 성격이 다른 유형의 보상체계가 사회적 차원에서 세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들을 사회적 가치로 삼고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관건인데, 경제현장과 각계각층의 적극적 참여와 토론이 요구된다.
사회적 가치에 기반해 보상을 받는 사람들은 공익적 활동에 들어간 비용을 보전받게 된다. 타인을 돕고 공공선을 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사회적으로 칭송받을 만한 일이며 그 의도를 훌륭하게 달성했음도 인정받는다. 더 큰 자부심과 보람과 책임감을 가지고 공공선에 기여한다는 소명에 더욱 매진할 힘도 얻게 될 것이며, 보다 많은 시민들이 유사한 활동에 나서도록 고무될 것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보상은 시장 참여자들의 마음가짐이나 의식을 변화시키고 시장의 성격 또한 인간적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은 타인의 이익에 대한 고려 없이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선이 달성되는 차가운 개인주의의 공간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가 시민권을 얻게 되면, 경제적 상호이익의 시장 관계는 서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느끼는 상호부조의 관계로 바뀌고, 시장도 도덕적이고 활력 넘치며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기풍의 공간으로 변모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새로운 기풍이 다시 시민사회에도 전파되는 가운데, 차가운 개인주의와 무책임한 관료주의를 뒤로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에 공공 신뢰와 시민 행복이 꽃피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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