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16 18:38
수정 : 2018.04.16 19:07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민화협 정책위원장
지난 10년, 얼어붙었던 판문점에 드디어 봄이 오는가 보다. 1월부터 남북회담이 열리고 끊어졌던 전화선도 연결되었다. 북한의 올림픽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이 판문점을 통해 남북을 오갔고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었다.
남북은 특사 교환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그 회담이 열흘 뒤 판문점에서 열린다. 분단 이후 70년간 한반도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니 감격과 동시에 욕심이 생긴다. 1989년 12월 몰타 미-소 정상회담이 동서 냉전구조 해체의 출발이었던 것처럼 이번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출발이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1989년 12월, 지중해 몰타 해역에 정박한 선상에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만났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몰타 미-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동서 냉전구조가 해체되었다고 평가한다. 미·소가 주도하던 냉전이 끝나면서 한반도 냉전구조도 해체됐어야 했는데,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는 반쪽만 이루어졌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1990년 9월 한-소 수교가 성사됐고,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다.
냉전 산물인 북방 삼각동맹은 해체된 셈이었지만 미국과 일본의 대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음으로써 한반도 냉전구조는 반쪽만 해체되었다. 북한의 동맹국들은 남한과 수교했지만 남한의 동맹국들은 대북 적대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자위력’ 확보 차원에서 핵개발의 길로 들어섰고, 2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북핵문제는 역설적이게도 한반도 냉전구조가 심화되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그런데 한달의 시차를 두고 열릴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냉전구조가 해체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 같다.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의 전초전인 남북 정상회담을 보름 앞둔 시점에서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아주 멋질 것”으로 생각하고, “나와 김정은 사이의 회담에 대한 준비가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나는 매우 존중하는 마음으로 협상장에 들어갈 것”이라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미국과 세계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외교적 결과들이 달성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미 최고 당국자들이 공개석상에서 이런 전망을 내놓는 것으로 봐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동안 북핵문제로 마음고생한 국민들의 요구 때문에라도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핵문제는 남북 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보장해야 할 북-미 수교나 평화협정은 미국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확인과 원칙적인 수준의 합의를 한 후 이걸 북-미 정상회담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주는 선에서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 정상이 비핵화를 확실하게 합의하고, 그 토대 위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순항하여 비핵화가 되면, 그 결과로 북-미 수교가 이뤄지고 북-일 수교도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90년대 초에 이루어졌어야 할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가 드디어 성사되어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된다. 후일 역사가들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출발로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은 제2의 ‘몰타 선언’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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